10대 어느 날 마이클 크라이튼을 알고 나서부터 급격히 성장했다. ‘쥬라기 공원’과 ‘잃어버린 세계’를 보면서 유전공학자와 프로그래머, 동물학자, 고고학자, 수학자가 되는 상상을 했고 네드리와 하딩, 그랜트, 말콤, 아비, 켈리, 닥터 손, 그리고 리처드 레빈이 하는 말과 행동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하딩이 켈리에게 남긴 조언과 이야기의 문을 닫는 닥터 손의 독백은 내 삶의 가장 큰 지표가 되었다. 한동안 어딘가 영어 이름을 써야 할 때면 리처드 레빈을 사용했다. 내가 상상하는 모든 그림은 그의 소설에 이미 등장한 것들이었고, 나는 그 세계를 실제로 만들고 싶었다. 내 꿈은 그의 이야기 속에서 태어났다.
1997년 여름, 영화 ‘아름다운 비행’을 보고 에이미 엘던, 안나 파퀸과 친구가 되기 위해 영어를 공부했다. 편지지 두 장을 꽉 채워서 뉴질랜드로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에이미를 향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는데, 얼마 뒤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 나서는 그 대상을 포레스트로 바꾸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를 향해 일기를 썼다. 그 시절 본 영화 중 최고는 ‘그랑블루’의 시작과 끝 장면이었다. 21세기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데이비드 카슨을 알았다. 그는 한동안 내 작업의 지향점이었는데, 전공이 사회학이란 것을 알고 용기를 얻었다. 몇 년 뒤 미술사를 공부하다가 클로드 모네를 알고 나서는 언젠가 꼭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모두가 실내에서 그림을 그리던 시절, 풍경 앞에 화판을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2007년 여름, ‘비주얼 컬처’라는 책을 읽고 미래를 바꾸었다.
고등학교는 이과를 다녔는데 이후 학업은 예체능과 문과 계열로만 연이 닿았다. 대학을 다니면서 시각디자인으로 미술학사를 받고, 이어서 고고미술사학과 언어학으로 문학사를 받았다. 한 디지털 회화 공모전에서 특선을 받은 적이 있다. 졸업 후에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곧 그만두고 게임 개발자가 되었다. 회사에서는 기획자로, 집에서는 프로그래머로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주말에는 바닷가 마을로 여행을 가거나 해가 잘 드는 곳에서 소설을 본다. 요즘 최대 관심사는 떡볶이 소스 만들기와 C#으로 세상을 움직이기다.
서울 잠실에서 태어나 일 년을 채 못 살고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이후 수원, 안양, 파주를 다니며 살다가 1999년 1월, 서울로 돌아왔다. 태어난 동네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석촌호수 가까이 몇 년간 산 적이 있다. 마음의 고향은 수원이며, 지금은 서울 동작구에 살고 있다.
언젠가 바닷가 마을로 이주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