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꿈에서 밤새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어떤 동네의 중심가 같은 곳이었는데, 사람들이 모두 떠났는지 어딘가 휑한 모습이었다. 한때는 활기가 넘쳤을지 모르겠다. 꽤 많은 시간을 걸었다. 낮부터 시작해서 밤까지, 새벽까지 걸었다. 사람을 만난 기억은 없다. 현실과 다르지 않게 꿈에서도 나는 혼자였다. 목적지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그 거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몸에 남은 느낌으로는 그렇다. 눈을 뜨니 아직 날이 어둡다. 구름이 많은가 싶어 날씨 앱을 켰더니 벌써 11시가 넘었단다. 그리고 밤에 많은 비가 내릴 예정이란다. 꿈에서도 비가 계속 내리다가 그치다가 했다. 꿈에서 본 거리를 현실과 연결해보고 싶어서 한참을 생각했는데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너무 오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Category: Random
하루살이의 의지
1.
“오늘 감정은 오늘로 끝낸다. 이게 가능해?”
“노력하면 안 될 일 있겠니.”
“내일 되면 지워지는 그런 건가.”
“뭐, 비슷해.”
“지우기 싫은 감정이 있을 땐 어떡해?”
“그런 게 있을 리가.”
“안 좋은 일 생길 땐 좋겠네.”
“응. 너도 배워볼래?”
“감정 지우는 거? 그거 뭐 누구든 배우면 할 수 있는 그런 거야?”
“누구나는 아니지. 의지가 있어야 해.”
“넌 어떻게 배웠는데?”
“그냥 알게 됐어. 어쩌다가.”
“편리하겠구나.”
“글쎄. 내겐 그냥 삶이라서.”
2.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언제는 하루살이라며.”
“그랬었지.”
“오늘 일은 오늘로 끝이라며. 내일 되면 다 지워진다며. 이제 그러기 싫은 거야?”
“응. 지우기 싫은 게 생겼어.”
“싫으면 안 지우고,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노력하면 가능하지. 의지가 중요하다니까.”
“알다가도 모르겠어.”
“세상일을 다 알 필요 있겠니.”
“어쩐지 다시 욕심쟁이로 돌아온 것 같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골목대장
늑대가 나타났다. 동네 입구에서 어슬렁거리는 녀석이 있다고 누군가 알려왔다. 그러면서 집에 총이 있는 사람은 챙겨서 나오라고 했다. 나는 총 대신 긴 막대기를 들고 나갔다. 집에 남은 사람들은 대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을 통해 우리를 지켜봤다. 사람들은 골목을 뒤지면서 늑대를 찾았다. 어떤 사람은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 내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 지난 뒤에 멀지 않은 곳에서 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늑대라고, 늑대를 발견했다고 외치는 소리도 났다. 여기저기서 창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머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몇 초 뒤에 가까운 곳에서 탕, 하는 소리가 났는데 이번에는 으악, 하는 비명도 함께 들려왔다. 사람들은 총소리가 난 곳을 향해 뛰어갔다. 나는 이제 됐겠지 싶어 집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때 눈앞에서 늑대가 나타났다. 나는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서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는데, 늑대는 나를 보면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나는 긴 막대기를 든 손에 힘을 주고 마음속 기도를 시작했다. 어디선가 다시 탕, 하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먼 곳이었다. 사람들은 아직 늑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늑대는 나를 향해 두세 걸음 걷더니 이내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가까운 골목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대로 서서 몇 초쯤 기다리다가 늑대가 사라진 골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시계탑 3:30
“언제 씻으려고?”
“몇 시지?”
“한 시 넘었어. 거의 두 시가 다 돼간다.”
“아, 씻어야겠구나.”
“여태 누워있었던 거야?”
“아니. 누웠다가 앉았다가, 컴퓨터도 했다가 뭐 이것저것.”
“밥은?”
“안 먹었지. 알잖아.”
“너 괜찮은 거 맞지?”
“그럼. 야, 안 괜찮을 건 또 뭐냐.”
“그냥 뭐. 내가 너를 아니까.”
“세 시? 시계탑이라고 했지?”
“세 시 반. 천천히 준비하고 나와.”
“메뉴나 생각해 놓으셔. 나 탄수화물은 안 먹는다.”
“그럼, 고기?”
“너 먹고 싶은 대로.”
“또 꾸미느라 늦지 말고, 대충 입고 나와.”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