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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자라면

어릴 땐 누구나 열정 넘치는 삶을 꿈꾼다. 나는 월급이나 받으면서 살지 않겠어, 자유로운 삶을 위해 청춘을 바치겠어, 자유롭게 늙어 가겠어, 아니, 늙지 않는 방법도 찾아내겠어, 그런저런 생각과 함께 자라난 아이는 어느 날 거울을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어른이구나, 어른이 되었구나. 열정은, 거울을 보고 스스로 어른임을 인지하는 순간 빠르게 증발한다고 한다. 누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아이의 마음에 처음 그 말이 들어온 순간부터 열정은 더 자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그 사실을 몰랐다. 이제 어른이 된 아이는 정열을 생각한다. 열정이 아니라면 정열이라도, 나를 활활 태우기라도 하자, 같은 생각을 하며 어제와 오늘을 보내고 주말, 그야말로 붉은 열기로 가득한 주말을 기다린다. 열정이 자라면 정열이 된다. 어른이 된 아이는 정열도 언젠가 다시 열정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재미있는 삶

여행하면서 살고 있다. 매주 월요일 아침을 다른 도시, 다른 나라에서 맞이하면서 산다. 집은 있지만, 집에 돌아올 이유가 딱히 없는 삶을 산다. 이런 게 극한의 자유인가 싶다.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면서 산다. 매주 금요일 밤, 처음 가보는 곳에서 저녁을 먹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춤추고 노래한다. 재미있다. 재미있는 삶이다.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삶이 있고, 상상만으로도 아는 삶이 있다. 하루이틀이 지나면 작심삼일, 며칠이 더 지나면 일주일, 그렇게 네 번이면 한 달. 시간은 느릿느릿 날아간다. 토막이 모이면 언젠가는 묶음이 되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세상도 열린다.

비 오는 밤

지난밤 꿈에서 밤새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어떤 동네의 중심가 같은 곳이었는데, 사람들이 모두 떠났는지 어딘가 휑한 모습이었다. 한때는 활기가 넘쳤을지 모르겠다. 꽤 많은 시간을 걸었다. 낮부터 시작해서 밤까지, 새벽까지 걸었다. 사람을 만난 기억은 없다. 현실과 다르지 않게 꿈에서도 나는 혼자였다. 목적지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그 거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몸에 남은 느낌으로는 그렇다. 눈을 뜨니 아직 날이 어둡다. 구름이 많은가 싶어 날씨 앱을 켰더니 벌써 11시가 넘었단다. 그리고 밤에 많은 비가 내릴 예정이란다. 꿈에서도 비가 계속 내리다가 그치다가 했다. 꿈에서 본 거리를 현실과 연결해보고 싶어서 한참을 생각했는데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너무 오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루살이의 의지

1.
“오늘 감정은 오늘로 끝낸다. 이게 가능해?”
“노력하면 안 될 일 있겠니.”
“내일 되면 지워지는 그런 건가.”
“뭐, 비슷해.”
“지우기 싫은 감정이 있을 땐 어떡해?”
“그런 게 있을 리가.”
“안 좋은 일 생길 땐 좋겠네.”
“응. 너도 배워볼래?”
“감정 지우는 거? 그거 뭐 누구든 배우면 할 수 있는 그런 거야?”
“누구나는 아니지. 의지가 있어야 해.”
“넌 어떻게 배웠는데?”
“그냥 알게 됐어. 어쩌다가.”
“편리하겠구나.”
“글쎄. 내겐 그냥 삶이라서.”

2.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언제는 하루살이라며.”
“그랬었지.”
“오늘 일은 오늘로 끝이라며. 내일 되면 다 지워진다며. 이제 그러기 싫은 거야?”
“응. 지우기 싫은 게 생겼어.”
“싫으면 안 지우고,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노력하면 가능하지. 의지가 중요하다니까.”
“알다가도 모르겠어.”
“세상일을 다 알 필요 있겠니.”
“어쩐지 다시 욕심쟁이로 돌아온 것 같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