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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자라면

어릴 땐 누구나 열정 넘치는 삶을 꿈꾼다. 나는 월급이나 받으면서 살지 않겠어, 자유로운 삶을 위해 청춘을 바치겠어, 자유롭게 늙어 가겠어, 아니, 늙지 않는 방법도 찾아내겠어, 그런저런 생각과 함께 자라난 아이는 어느 날 거울을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어른이구나, 어른이 되었구나. 열정은, 거울을 보고 스스로 어른임을 인지하는 순간 빠르게 증발한다고 한다. 누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아이의 마음에 처음 그 말이 들어온 순간부터 열정은 더 자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그 사실을 몰랐다. 이제 어른이 된 아이는 정열을 생각한다. 열정이 아니라면 정열이라도, 나를 활활 태우기라도 하자, 같은 생각을 하며 어제와 오늘을 보내고 주말, 그야말로 붉은 열기로 가득한 주말을 기다린다. 열정이 자라면 정열이 된다. 어른이 된 아이는 정열도 언젠가 다시 열정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재미있는 삶

여행하면서 살고 있다. 매주 월요일 아침을 다른 도시, 다른 나라에서 맞이하면서 산다. 집은 있지만, 집에 돌아올 이유가 딱히 없는 삶을 산다. 이런 게 극한의 자유인가 싶다.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면서 산다. 매주 금요일 밤, 처음 가보는 곳에서 저녁을 먹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춤추고 노래한다. 재미있다. 재미있는 삶이다.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삶이 있고, 상상만으로도 아는 삶이 있다. 하루이틀이 지나면 작심삼일, 며칠이 더 지나면 일주일, 그렇게 네 번이면 한 달. 시간은 느릿느릿 날아간다. 토막이 모이면 언젠가는 묶음이 되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세상도 열린다.

답답한 사람

1.
“나 ○○님 본 거 같은데. 전에 수트 입은 거.”
“수트요? 저는 무색무취입니다.”
“결혼식이라고 본 것 같은데.”
“그건 민성님.”
“아, 기억의 혼란.”

2.
“저 사람 다 알면서 저러는 거예요. 제가 압니다.”
“아니, 무슨 매력이 있길래요?”
“○○님이 끼가 좀 있어요.”
“잘생겼어요? 부티가 나나?”
“그냥, 아저씨 같진 않아요.”

3.
“내가 귀에 못 박히게 몇 번을 말했는데도 일을 저 지경을 만들고.”
“저 막 끼 부리고 그러지 않아요.”
“그건 태생이라서.”
“무슨 일 벌이지도 않고요.”
“그러시겠지요.”

그들만의 리그

A: 저는 여기에서 유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B: 잘생김을 담당하는 분이겠죠. 유머라면 전 ○○님이 제일 웃겨요.
C: 이렇게 지훈님은 2인자가 되는 것인가.
B: 아, 허무개그는 또 모르겠다.
A: 바로 그겁니다.
D: ○○님이요? 취향 독특하시다.
B: 요새 제일 웃겨요 저는. 설마 나뿐인가.
C: 아니에요. ○○님 웃김.
D: 픽도 안 나와요. 항상 무표정에.
B: 이모티콘이 너무 웃겨요. 늘 처절하고 괴롭고 포효하고.
C: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
D: ○○님 = 쟤 왜 저래, 동일어예요.
B: 어울린다. 사실 여기의 코미디언은 제 마음속 연예인 지은님이에요.
C: 지은님 언어술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