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내가 바라는 대로 곱게 흘러가지 않는다. 갖고 싶은 전공, 하고 싶은 공부, 갖고 싶은 직업, 다니고 싶은 회사는 언제나 명확히 정해져 있었지만 막상 눈 앞에 선택지로 놓이는 건 그 옆에 있는 다른 것들이었다. 그렇게 갖고 싶은 전공 대신 다른 전공을 택하면서 학교를 갔고, 하고 싶은 공부 대신 옆에 있던 다른 공부를 시작했고, 갖고 싶은 직업을 이미 가진 동료들과 한 팀이 되어 그 옆에 있는 다른 직업을 갖게 됐고, 다니고 싶던 회사는 몇 년 전 쪼개져 둘, 셋, 넷으로 점점 분화됐다. 그리고 선택의 순간 항상 눈 앞에 나타나는 다른 후보들이 있다. 이게 기회인지 아닌지, 빛깔만 좋은 살구인지 판단하기는 참 힘들뿐더러 그 선택을 한다는 건 내게 잔인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순진한 생각을 한다. 멀리서 운명이 지켜보다가 ‘답답하게 자꾸 딴 데만 보네’ 싶을 때 나타나서 나를 찌른다고. 이게 맞는지 아닌지 네가 알리 없지만 어디 둘러봐, 당장 다른 선택지가 있어?
그래서 나는 또 희한한 여행을 시작한다. 싫어하던 건 내 역사로 편입되어 싫어할 수 없게 되고 하고 싶지 않던 건 내 자아의 일부가 되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십 년, 이십 년 뒤 결론이 궁금하지만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결론을 갖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