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9일이 적힌 글을 발견했다. 이날 무슨 생각을 했고 그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또 선택지를 더듬고 있었을 거다. 나에 대한 보상은 내가 떳떳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법이다.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 2009년 겨울이다. 당시 나는 대학원에 합격한 상태였고 정말 어디든 가야겠다고, 보상이 필요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론의 늪에 갇히게 될까 두려웠고, 얼마 뒤 입학 취소를 결정했다. 종종 그때 생각이 나지만 좋은 결정이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학교를 뒤로 하고 나는 행복하게 살 방법을 찾기로 했다. 일단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남들처럼 땀냄새나는 손으로 악수도 해보고 돈도 벌어보고 싶었다. 그래도 그중 해보고 싶었던 일로, 나는 다시 디자인을 시작했다. 아니, 디자이너가 되기로 했다.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금방 한 곳에서 나를 뽑아주었고, 디자이너라는 글자가 박힌 명함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면서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오래 꿈꾸고 좋아하던 일을 직업으로 가지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돈이 생각만큼 나를 행복하게 하진 않는다는 것. 물론 돈은 좋았다. 갖고 싶은 걸 갖지 못해 애태울 일도 없었고 읽고 싶은 책을 표지만 쓰다듬고 놓을 일도 없었으니까. 학교로 돌아갈까 망설인 적도 있다. 교수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고 진지하게 진로 탐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운명은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고 무엇이 되었든 돈을 벌어야 했다. 그게 내가 무죄로, 겁쟁이가 아닌 용기 있는 인간으로 살아갈 유일한 방법이었다.
여러 곳을 기웃거리다가 다시 회사를 들어가게 되었다. 꿈도 꾼 적 없는 회사원을, 생각조차 싫은 월급쟁이를 두 번이나 하려니 숨이 막히지만 나름, 나쁜 경험은 아니란 생각을 한다. 여전히 돈을 벌면서 적당히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 다시 학교를 가고 싶었으나 여태 결정하지 못한 것도 결국 돈 때문이다. 이제 나는 세상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걸 안다. 일을 다시 시작한 지 일 년 반이 지났지만 틀에 박힌 수직적인 동물이 새삼 돈을 깨닫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한다는 게 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최근에야 깨닫는다. 나는 회사의 구성원이고 사회의 구성원이다. 새벽이 한창인 시각에 글을 쓰고 있지만 몇 시간 뒤 해가 뜨면 어디론가 가야 한다. 구성원이니까. 누군지 모를 사람들의 하루를 나누어 갖고 그들의 미소에 화답하고 점심은 어디에서 먹을까 저녁은 누구와 먹을까 끝없이, 이유도 목적도 없이 누군가와 내 하루를 나누고 그들의 하루를 돌려받아야 하니까. 사람들이 미덕이라 여기는 그 어떤 것들이 내 몸에 들어온 순간 나도 보답을 해야 한다는 걸 언젠가, 회사 앞 길가에서 깨달았다. 그렇게 일 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든 건 지난여름이다. 이번엔 결심이었다. 학자금도 다 갚았으니 뭐라도 사 들고 가야지 싶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샀다. 이제 누구나 갖고 있다는 DSLR을 (내 기준으로는) 거금을 들여 장만했다. 나에겐 필요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혼자 다니려면 뭐라도 손에 쥐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셔터 소리를 갖고 싶었고, 기분도 내고 싶었으니까.
추석 다음 날 외갓집을 다녀왔다. 할아버지께 세배도 드리고 용돈도 받고,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밤은 다른 곳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통영으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다. 출발까지 한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지만 짐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카메라와 티셔츠 두 장, 갈아입을 속옷 몇 벌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나머지는 도착해서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뭐가 있는지도 몰랐고, 그냥 바다 근처로 가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검색을 해보니 해저터널과 케이블카도 있고 주변 섬들도 많다고 한다. 몇 시간 뒤 도착할 터미널 근처 숙소도 찾아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휴대전화로 여행 정보를 얻다니 굉장한 세상이구나. 새벽에 도착해도 잘 곳 없어 죽지는 않겠구나.
되도록 차는 타지 않기로 했다. 천천히, 많은 걸 보고 싶었으니까. 터미널을 나와 숙소를 향해 걷는 길, 아무도 없는 깜깜한 길에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생판 모르는 곳에 난 혼자였고, 밤이 깊었으니 연락이 올 일도 없었다. 당장 누가 부른다 해도 어디에서든 멀리 있었으니까. 쾌감이란 이런 거였다. 동경하던 바닷가 마을에 아는 사람 없이 혼자 있다는 것.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도 같았다. 가끔 머리를 스칠 때는 있었지만 몸으로 느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진짜 자유였고 주인공이었다.
이 뒤로는 여행과 상관없는 글이 이어지는데 아마 생각을 비우고 싶었던가 보다. 지금도 난 망상을 버리고 싶지만 이 망상은 인간 피부와 같아 뙤약볕에 뻘겋게 타고 껍질이 올라오기 전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2012년 8월경 나는 두 번째 여행을 떠났고, 이번엔 전라남도였다. 서울에서 목포, 홍도, 해남, 땅끝, 노화도, 보길도, 완도, 신지도, 고금도, 강진, 벌교, 고흥, 나로도, 여수, 돌산도, 오동도까지 내 모든 걸 부으며 쏘다녔다. 진짜 세상을 사는 기분이었다. 바닷가 어딘가에서 잠이 들 때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눈에 들어오는 것, 마음에 들어오는 것 어느 하나도 놓치지 마라. 젊음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고 다시 오지 않아. 하고 싶은 것도 맘껏 해보거라. 대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