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어제 오후 세 시에 느낀 감정을 지금 떠올릴 수 있느냐 물으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어제 오후 무슨 생각을 했나 일일이 기억할 수 없으니 대강 이런 느낌이겠지, 단정 지으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이번 주말은 심심함이 덜하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건 어쨌든 시각적으로 외로운 일은 아니다. 어제의 일과는 오늘과 비슷했던 걸로 포장하면 그만이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사투를 이겨낸 승자가 된다. 하루의 계획 같은 건 없지만 일조량과 바람 세기에 따라 주인 없는 각본은 생긴다. 집에서 종일 텔레비전을 보며 뒹굴든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로의 유목민이 되든, 시간이 지나면 모두 다음 기분의 재료가 된다. 오랜만에 주말 출근을 했더니 갑자기 쓸모 있는 인간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내일 오후가 되면 오늘 저녁 여덟 시에 느낀 감정을 짜내어 다시 입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