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가 부지런히 돈다. 역시 더위엔 선풍기다. 복사기를 열고 종이를 서너 장 꺼내 마루에 펼친다. 아, 종이가 날린다. 올려놓을 게 없나 찾다가 빈 컵이 보인다. 갑자기 목이 마르다. 냉장고를 여니 숨이 트인다. 에어컨이 따로 없다. 물을 꺼내다가 찌그러진 맥주캔을 본다. 누가 왜 넣었지. 추리를 하고 싶으나 혼자 사는 집의 범인은 뻔하다. 컵에 물을 따르다가 좋은 생각이 난다. 종이를 찾아 대강 그려두고 다시 물을 따른다. 선풍기 소리가 요란해진다. 지난주부터 새로 사려 했지만 집을 나서면 잊는다. 종이가 날린다. 물컵을 내려두고 냉장고 문을 연다. 밖으로 나가야겠다. 막 세 시가 지났으니 기온이 내려갈 때다. 적당히 걸으면 한 바퀴, 서두르면 두 바퀴는 걷겠다. 오늘따라 동네가 조용하다. 종이를 구겨다가 호주머니에 넣는다. 언젠가 시험공부 중 문제지를 구겨 입에 넣고 씹은 기억이 난다. 생각을 놓으려면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