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고 싶은 옷이 많았던 때가 있다. 언젠가 옷을 자주 사면서는, 기분 따라 고를 수 있게 미리 준비한단 생각도 했다. 가끔 옷장을 정리하다가 마지막 입은 게 언제인지 생각나지 않는 옷을 본다. 그냥 두자니 이번에도 입지 않을 게 뻔하고 버리자니 추억이 아깝다. 채우는 건 금방인데 비우기는 어렵다.
지하철을 타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창밖이 까맣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자리에 앉으면 여러 사람을 마주 본다는 게 두 번째였는데 요즘은 곧잘 탄다. 쉬는 날마다 종로를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는데, 자리에 앉는 대신 선 채로 창에 비친 사람들을 보는 게 재미있다.
규칙적인 여가를 보낸 지 반년쯤 됐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료를 마신다. 책을 보는 시간도, 걷고 이동하는 시간도 거의 같다. 매번 비슷한 음악을 들으니 조급함도 쉬이 물러난다. 취미는 쉽게 오고 쉽게 사라진다. 사람도 그렇다. 미움 많은 세상,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