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속에서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을 잘 잊는다. 가끔 불러야 할 땐 눈을 보거나 몸을 쳤는데 이젠 익숙해서 그냥 이름을 묻는다. 사람들의 말을 듣다가 자주 놓치기도 한다. 둘이 있을 땐 되묻는데 여럿일 땐 나만 못 들었나 싶어 그냥 웃고 만다. 그래서 셋 이상의 자리엔 끼지 않으려 한다. 말을 하려면 생각을 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 말을 꺼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때를 놓치면 의미가 사라지니 결국 말도 안 하게 된다. 그래도 좋다, 싫다, 고맙다, 미안하단 말은 제때 하려고 한다.

눈은 사람의 미래를 본다고 했다. 귀는 과거를 듣고 입은 현재를 말하니 들은 만큼 말하고 또 그만큼 보는가 보다. 요 며칠 눈앞이 흐리다. 책을 보다가 고개를 자주 드는데 참고 보다 보면 금세 어지러워진다. 눈을 비비면 잘 보일 때도 있고 더 흐려지기도 한다. 오늘을 살다 보니 생각이 짧아지고 내일을 잊자 하니 꿈을 잊어간다. 하고 싶은 건 몰라도 할 수 있는 건 많고, 시간도 많다. 느리게 살자 했더니 모든 게 느려 보인다. 오늘도 안녕, 행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