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왜 뽑았어요? 흰 도화지 같아서. 잘 써지고 잘 지워지는 사람을 원했거든. 면허증은 가져왔지? 네, 여기. 사진 본인 맞아? 몇 년 전이긴 한데. 앳되구나. 어디 보자, 네가 몰 배는 저기 있다. 겉에 뭐가 적혔던 거예요? 녹이 많이 슬었는데. 아, 전 주인이 꿈을 좋아해서. 꿈이오? 응. 저 배 이름이 꿈이었어. 서울에 사는 양반이었는데 뭐라더라, 하여간 글 쓴다고 연락이 끊겼어. 배를 두고요? 맡겼지. 내가 잠시 맡아주는 거야. 제가 운전하다가 그분이 다시 오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제 전 주인인데, 뭐 어때. 배에 무슨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있겠지. 여기 있는 배, 전부 사연 있는 거야. 배 모는 사람들은 사연도 몰고 다니지. 그러니까 뱃사람, 하면 말 많다고들 하잖아. 저도 이제 뱃사람이에요? 봐야지, 뱃사람인가 아닌가. 이삼일 되면 딱 보여. 아저씨는 언제 뱃사람이 됐어요? 난 육지인이야. 이제 바다는 가지 않아. 그만둔 거예요? 육지인이라니까. 그래서 널 뽑았잖아. 아, 네. 그리고 말이야, 아저씨 아니다. 그럼 뭐라 불러요? 글쎄, 뭐 없으면 이름 부르든가. 제가 돌아와도 여기 계실 거죠? 응. 집이니까. 참, 전 주인이 이 말 전해주라 했어. 허물어져 가는 배에도 반짝임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