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순대

마지막 출근길에 비를 맞으면 행운이 깃든다고, 모르는 번호에서 문자가 온다. 그런 소리를 할 사람은 한 명뿐이지만 오늘은 모른척해 준다. 이 누님의 발걸음이 가벼운 날이니까. 번호는 또 언제 바꾸었나 모르겠다. 들쭉날쭉, 네 인생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나도 여기까지 오고 말았지만. 이게 다 비가 와서, 비 오는 날 순대를 먹었기 때문이다.

하필 현금이 없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그 순간의 넉살이란. 네가 웃을 때 눈이 사라진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당연하지. 만난 것도 처음인데. 흰 티에 빨간 바지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빨간색은 등산객들이나 입는 건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날도 비가 왔다. 운동화가 다 젖었다며 너는 나를 신발가게로 끌고 가더랬다. 나중에 본 그때 사진에서 나는 한 손에 튀김 봉지를 꽉 붙잡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츠는 아직 잘 있다. 덕분에 마지막 출근길에 발이 젖지 않으니 조금 고맙기는 하다. 창창한 앞날을 두고 시답잖은 생각이라니. 행운이 깃들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오늘은 네 모든 과오를 잠시 덮어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