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이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커피에 대해 물으면 네 눈에선 빛이 났다. 너에게서는 항상 특유의 향이 났고 나는 너를 보는 게 좋았다. 가끔 그 눈 속에서 나도 빛난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를 마셔본 일은 없지만 너를 통해 향을 알았다. 함께 있으면 모든 게 좋았다. 그리고 지금 오랜만에 너의 머그잔을 본다.
일 년 전 카페를 정리한다고 했을 때 사실 난 예감하고 있었다. 네 눈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던 때다. 그날도 넌 새로운 삶에 대해, 제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아직 너를 보는 게 좋았지만 네 눈 속에 나는 더 이상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한때 내 것이기도 했던 너의 머그잔을 바라본다. 익숙한 건 겉에 남아있는 그림뿐, 모든 게 낯설다.
저녁 하늘이 유난히 붉다. 창밖 노을 따라 네 머리도 붉게 물든다. 너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머그잔에 담긴 커피에서 내가 알던 것과 다른 향이 난다. 아마 귤 재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제주의 날씨는 어떠냐고 묻자 네 눈이 반짝 웃는다. 네가 입을 뗀 잔에는 옅은 오렌지가 남아 있다. 창밖은 이제 그림자도 붉게 물들었다. 나는 잠시 너를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