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는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 그림자를 감춘다. 나는 네 옆에 있다. 너의 향에 대한 기억을 그리고 있다. 나는 네 향을 훔친 빈자리에 내 이름을 쓴다. 네 그림자가 외로워 겉옷을 덮는다. 그리고 다시 이름을 쓴다. 나는 네가 사는 곳을, 나이를 지운다. 네 그림자는 나를 잊는다. 나는 너의 향을 입고 그림자를 밟고, 나를 지운다. 이제 너는 향으로만 남았다. 너는 향으로 남아 세상을 여행하고 나는 그림자로 남는다. 그리고 나는 기억을 잃는다. 어떤 그림자에서는 좋은 냄새가 난다.
그림자는 세상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한 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했어.’ 듣지 않아도 어떤 가락인지 아는 음악, 누워서도 할 수 있는 많은 것, 문밖의 뻔한 세상을 떠올린다. 그리고 사람은, 듣지 않아도 어떤 가락인지 아는 음악을 챙겨 들으며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생각을 일어나서 하고 문밖에 뭐가 있는지 뻔히 알지만, 둘러봐야 할 이유를 생각한다. 비슷한 결과를 얻을 게 뻔한 일을 다시 하면서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리듬을 타는 이유를 오늘은 찾아보자 다짐한다.
그림자가 사람에게 묻는다. ‘그럼 향이 널 죽이는 거니?’ 사람은 향을 떠올린다. ‘아니. 향은 언제나 승리한다. 생각보다 힘이 세서 나를 삼킨다. 하지만 그게 날 죽이는 건 아니다.’ 그림자는 마지막 남은 향을 지운다. 사람은 내일에 대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