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집은 옥탑방이어서 계단을 수없이 올라야 했다. 언젠가, 아직 몇 번 만나지 않았을 때쯤 그의 방에서 한 납부 고지서를 봤다. 주소는 그의 집이 맞는데 수신인이 달랐다. ‘황현주가 누구야?’라고 물었을 때 그는 ‘고모.’라고 답했지만, 그의 성은 황 씨가 아니었다. 그날 그의 방 한쪽 벽에는 머플러도 걸려 있었는데 그 물건 역시 ‘고모가 다녀가서’ 생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한 여자의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씨 되시죠?”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저, ○○이 사귀는 사람입니다.”
“네?”
“○○이 많이 좋아하시죠? 죄송하지만, 그만 만나주셔야겠습니다.”
“누구시라고요?”
“그럼, 연락 그만해주세요.”
전화가 끊긴 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수화기에서는 전원이 꺼져 있다는 메시지만 반복해서 들릴 뿐이었다. 먹다 남은 라면을 보는데 목이 막혀왔다. 한 시간 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엔 그였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며 우는 그에게 나는 그 여자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말이 없었지만, 내가 ‘황현주야?’라고 묻자 짧게 ‘응.’이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의 세컨드도 아니고 써드, 동시에 만나는 세 번째 연인이었던 셈이다. 그것도 연인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입고 있던 니트가 원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