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 기대어 앉았다. 가까운 곳에서 바스락 소리가 난다. 편지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며칠째 하늘이 맑다. 미움에 관해서는 이제 할 이야기가 없다. 그런데도 왜 너를 떠올리면 거부감이 드는지 모르겠다. 다시 바스락 소리가 난다. 이번엔 바로 옆인 것 같다. 어디선가 읽기로 느티나무는, 잎이 넓은 타원을 그리는데 끝이 둥글단다. 청설모 한 마리가 바쁘게 지나간다. 편지의 글자가 춤을 춘다. 누군가 시간에 쫓겨 급히 쓴 것 같다. 나도 미움을 그리지 않은 지 꽤 되었는데, 생각하다가 고개를 든다. 구름이 느리게 지나간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인기척이 난다. 연필을 깎다가 손이 조금 베었다. 반창고 대신 나뭇잎을 대고 끈으로 묶는다. 편지지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 너를 처음 본 건 옷장에서 반소매 티를 막 꺼내던 때였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 어디서 나뭇가지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나는 미움을 잊었다. 너에 관해서도 더는 할 이야기가 없다. 그런데도 왜 자꾸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둘레가 한 아름이 넘는 것을 뜻한다고, 언젠가 너는 말했다. 내 마음은 아름드리야. 너는 나를 안을 수조차 없을걸. 청설모 한 마리가 바쁘게 지나간다. 잠시 손을 떨고 있었다. 날이 꽤 좋은데, 생각하다가 하늘을 본다. 구름이 멈추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