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장을 연다. 오늘은 무얼 먹을까 고민한다. 라면, 수프, 5초, 10초, 만두, 볶음밥, 20초, 라면을 집어 든다. 어제 먹은 것과 브랜드만 다르면 됐지. 참치캔도 집을까 하다가 그냥 둔다. 생각만으로 배가 불러오는 기분이다. 찬장 문을 닫는데 먼지가 소복이 내린다. 냄비에 물을 담는다. 가스 밸브를 열고 불을 지핀다. 냉장고를 열고 계란을, 계란이 없다. 아니, 구석에 하나가 남았구나. 치즈도 꺼내어 둔다. 어디 보자, 김치도 아직 남아 있고 물도 넉넉하고, 콜라를 머그잔 가득 따라다가 테이블에 앉았다. 물이 끓기를 기다린다.
티브이를 켠다. 채널을 돌리면서 시간을 가늠한다. 뉴스를 하기엔 이른 시간이구나. 영화 채널을 찾아간다, 가던 중 맛집 탐방 프로그램을 본다. 맛있겠다. 저런 음식은 언제 먹어볼 수 있을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우선 밥을 먹고 생각하자. 물이 끓나 보다. 냄비 뚜껑을 열고 라면을 넣는다. 면은 미리 쪼개어 두지 않으면 깜박 잊는다. 그리고 먹으면서 후회를 한다. 면이 길면, 당겨도 당겨도 면발이 끝나지 않으면 기분이 상한다. 먹는 것만큼은 내 마음대로 되어야지. 계란은 마지막에 넣고 흰자만 저어준다. 반숙 노른자가 흘러나온 국물, 그것은 제일가는 맛입니다. 그렇고 말고요.
밤새 슬픈 꿈을 꾸는 상상을 했다. 그럴 수 있다면, 할 수 있다면 기억을 모두 지워보고 싶다. 그리고 모든 걸 다시 해보고 싶다. 세상 제일가는 맛을 넘기면서 기억도 한 모금, 오늘 일과를 넘겨 둔다. 행복한 꿈이었다. 현실은 상상보다 말랑한 법이니까. 나는 종종 다른 사람의 꿈을 훔치는 상상을 한다. 그 사람이 나이길 바라며 꿈을 짓는다. 배가 금세 불러오지 않는 걸 보니 오늘은 좋은 날이구나. 잘 살아 있구나. 과자는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찬장을 다시 본다. 맛있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