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가죽

사유하는 자는 두려움을 모른다. 이름 모를 동물은 자신의 가죽을 들고 거울 앞에 선다. 뻣뻣한 털 아래로 온기가 남아 있다. 눈이 눈을 보고 입이 입을 말한다. 네 주인은 어디에 있느냐. 가죽이 빈 공기에 대고 묻는다. 거울 위에서 화장기 없는 얼굴이 웃는다. 두려운 자는 생각하는 법을 잊었다. 동물은 비스듬히 서서 자신의 털을 고른다. 제 이름부터 알려 주십시오. 쓰고 남은 것이라도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게 사람의 마음이다. 거울 앞에 선 자는 부끄러움을 참는다. 주인 없는 가죽이 온기를 잃어간다.

페일 그린이라고 합니다. 그 색깔이오. 저는 어둡게 하고 싶었는데 전 주인이 반대해서요. 거울은 유리만 갈면 감쪽같을 겁니다. 산 지도 얼마 안 돼서 거의 새것이거든요. 후덥지근하죠? 이 방이 환기가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문을 꼭 열어두어야 해요. 밖에 걸린 건 이따 오후에 치울 겁니다. 인부가 오기로 했어요. 냄새는 금방 빠지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아마 큰 동물을 키웠던가 봅니다. 청소는 한 번 더 해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