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바다

열두 시. 저녁에 비가 온다고 했다. 잠에서 깼다가 다시 잠들고를 반복한다. 커튼 뒤로 바람이 분다. 눈을 감으면 빨간 점이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점은 선이 되었다가 면이 되고, 다시 선이 되었다가 점으로 돌아온다. 커튼 너머로 자동차 소리를 듣는다. 그림자가 방을 한참 덮더니 사라진다. 베개 밑으로 손을 넣고 아직 남아있는 온기를 찾는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잘 자라.

꽃가루가 날아든다. 기침을 참아 본다.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면 점들이 꽃을 피운다. 커튼 너머로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누군가 앞집 벨을 누르고 있다. 이불 속으로 몸을 밀어 넣고 식어가는 피부를 찾는다. 세 시. 눈을 뜬다. 커튼 뒤로 자동차가 지나간다. 소리가 육중한 걸 보니 트럭이다. 눈을 감으면 파란 점이 무수한 선을 만들다가 사라지고, 다시 점이 되어 나타났다가 선을 만든다. 바다야 울지 마라. 도시에서도 잘 살아가고 있단다. 힘내라 우리 아가,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