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살아라. 항상 밝고 뜨거워라. 한여름 중천에 뜬 해처럼 빛나기만 하여라. 아빠의 수첩에서 발견한 짧은 글 제목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언젠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우주 찬가라고 했다. 바를 정에 해를 부를 때 쓰는 그 해라고. 그래서 아니, 이름 말고 글이랑 제목, 이것들의 의미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냥 너’라고 하면서 웃었다. 아빠는 웃으면 장난꾸러기가 된다.
내가 아기였을 때 우는 것을 본 어른은 손에 꼽는다고 했다. 나를 처음 받아낸 의사와 엄마, 아빠 정도인데 잠을 깨거나 배가 고파도 우는 일이 없어서 키우는 데 애를 먹었단다. 처음엔 조용해서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애가 뭘 원하는지 알 길이 없으니 답답할 만도 했겠구나 싶다. 다행히 말을 일찍 배워서 밥, 엄마, 졸려, 같은 단어로 원하는 걸 표현했다고는 하는데 이제 겨우 말을 배운 아기가 ‘졸려’라고 했다고, 아빠의 진술에 의하면 발음도 꽤 좋았단다.
이름 덕분인지 유난히 밝은 아이였다고도 한다. 시끌벅적한 어른들과 있어도 방긋 웃기만 했다는데 누군가 ‘얘는 무슨 말인지는 알고 웃는 거야?’ 하고 물으면 오히려 더 크게 깔깔대며 웃었다고 한다. 그래서 종로든 명동이든, 엄마의 젊은 날 사진에는 항상 내가 같이 있었던가 보다. 떨어져 있으면 투정이 심해서 그랬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라 뭘 봐도 웃기만 하니까 기분이 좋아서 자꾸 데리고 다녔다고, 나는 엄마와 아빠의 젊은 날 마법 가루 같은 존재였단다. 몸에 뿌리면 웃음이 절로 나오는 뭐, 그런 거라고. 그러니까 아빠의 낡은 수첩에 있던 글은 주문이었던 거다. 내 삶이 항상 빛나기를, 밝고 뜨겁기만을 바라던 한 젊은 날 장난꾸러기 같던 남자가 쓴 ‘정해’라는 주문.
바르게 살아라. 항상 밝고 뜨거워라. 한여름 중천에 뜬 해처럼 빛나기만 하여라. 너는 웃음을 모를 때부터 웃었으니 언젠가 슬픔을 모르고 울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빛을 잃지 말아라. 네 심장이 뜨거운 만큼 너는 쉽게 지치지 않을 것이다. 금세 일어나고 다시 뛸 것이다. 언제나 밝은 해처럼 네 삶은 빛날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변함없이 빛날 것이다. 그러니 바르게만 자라다오. 내 거울아, 행복하게 살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