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버리게

슬리퍼가 제일 쓸모 있을 때는 비가 올 때야. 신발 젖을 걱정 없지, 양말도 필요 없지, 물이 튀어도 슬리퍼니까, 금방 마르는데 뭐 어때 하는 거지. 발가락 사이에 줄이 들어가는 걸 쪼리라고 하지? 그건 좀 불편했어. 바닥이 젖어서 한번 미끄러진 적이 있는데 그 줄 때문에 아프더라고. 물론 시원하기는 슬리퍼에 비할 바가 아니지. 일단 발등이 훤하잖아. 비가 씻어주기도 하고.

오후에 비 소식 있다며. 나는 말이야, 가끔 우산 없이 다니거든. 무겁잖아. 번거롭기도 하고. 작고 가벼운 건 들고 다니기는 편한데 우산 구실을 못 하고 긴 건 무겁지. 무겁고 귀찮고 그래. 가방에도 안 들어가니까 계속 손에 쥐고 있어야 하고. 비? 맞는 거지 뭐. 우산도 없는데 어쩌겠어. 근데 되게 시원하다. 그렇게 안 다녀봤지? 머리 대충 묶고 티셔츠 하나 입고 나가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는 거야. 맨발에 슬리퍼 신고, 천 쪼가리 조금 걸친 게 딱 자연인 체험이지. 그래서 가끔 뉴스에서 내일 비 온다, 곧 장마철이다, 하면 괜히 설레기도 해. 웃는 거 봐. 진짜 시원하다니까. 언젠가 너도 꼭 해봐. 시작은 어려운 법이니까 내가 같이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