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데

창문이 고장 났다. 바람이 세게 부는데 창을 닫을 수 없어서 비가 들이친다. 책상이 젖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고 둔 컵에 어느새 물이 차 있다. 책을 안쪽으로 옮겨야 한다. 책장을 사야 하는데, 생각만 몇 달을 했더니 결국 고생이다. 게으름 때문이다. 창문이 잘 닫히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날이 좋았기 때문이며 이제 태풍이 다 지나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을 테니 미뤄둔 나들이 지금 하시라고.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은 믿는 게 아니란다. 그래도 책장은 필요할 때 바로 샀어야 하고 창문이 닫히지 않으면 고쳤어야 한다. 그랬으면 지금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옮기는 게 아니라 읽고 있었을 테니까. 생각해보니 억울해서 책 옮기기를 그만둬야겠다. 연주하고 싶은 곡이 생각났다.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피아노 뚜껑을 연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빗소리가 들어온다. 책은 비닐을 찾으면 대강 덮어 둬야겠다. 아무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