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이 부러졌다.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싶어 사두었는데 막상 감성이 필요한 순간 부러지고 만다. 몇 문장 쓰지도 않았는데, 처음부터 불량이었거나 연필도 나이가 들어서 약해졌는가 보다. 오랫동안 꽂아만 둔 게 미안하면서도 왠지 서운하다. 종이에 남은 가루가 눈물로 보인다. 지우개를 가져다가 앞서 쓴 문장을 지웠다. 연필은 쓸 수 있을 때 의미 있는 것이니까 내게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하자.
속도는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가 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물리량으로, 어떤 물체의 위치 변화를 시간 간격으로 나눈 값이다. 여러 번 읽어 봐도 어렵다. 문장을 통으로 외우면 좋을 텐데 내 머리는 바빠서 그럴 틈이 없다. 그래서 여기에 적어 둔다. 시간은 제멋대로 흐르고 하루는 시간을 넘어 내일로 간다.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력으로 달린다. 여기에다가 속력 대신 ‘속도’를 쓰려면 문장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