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짧게 자른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온다. 슬리퍼를 신고 천천히 걷다가 멈추다가 한다. 멈춰있을 땐 몸이 한쪽으로 기우는데 본인도 알고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제 보니 키가 꽤 크다. 문을 나올 때는 구부정해 보이더니 걸음을 옮기면서 점점 자세를 잡아간다. 검은 티셔츠에 검은 바지, 무늬는 어디에도 없다. 삼 년 전에도 지금과 비슷했다. 구부정하게 나와서는 걸으면서 키가 점점 커지길래 신기하다고 웃었다. 내가 정 선생, 하고 부르면 돌아오는 말은 이 선생이었고 할 말이 없어서 먼 산을 보고 있으면 그는 거리의 사람들을 빤히 관찰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그에 대한 생각을 하면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장단에 맞춰 손뼉 치는 능력이 가히 으뜸이었기 때문이다. 진지한 장면이지만 보고 있으면 웃지 않을 수 없으니 역시 특별한 능력이라 하겠다. 그는 일 년 전부터 면도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아끼는 제자가 있는데 그 제자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인생의 흔치 않은 다짐이라고 했다. 거리에 사람도 없을 시간이라 그의 희멀건 피부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수염은 생각만큼 많이 자라 있지 않다. 걸으면서 자꾸 두리번거리는 건 어딘가 내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손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면 아침을 잘 보내야 한다. 매일 오 분의 시간을 내어 우리는 겁 없는 상상을 해야 하고, 살아가는 이유를 찾기 전에 창을 열고 새벽 공기를 마셔야 한다. 그러면 이유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게 된다. 너는 새벽을 모른다고 하겠지만 새벽은 어제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슬플 수는 있어도 그 감정이 나를 무너뜨리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솔직하게 살아도 괜찮다. 기분이 좋을 땐 웃고 그렇지 않을 땐 울면 그만이다. 많은 것이 그의 머리에서 나와 내게로 들어왔다. 그를 세상에 소개하기까지 석 달이 걸렸다. 나는 그의 이름을 모르고 그는 내 얼굴을 모른다. 나는 언젠가 그의 이름을 알게 되겠지만 그는 내 얼굴을 영영 볼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을 알고 지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