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놓아줘

연식이 오래되어 그렇단다. 쭈글쭈글한 것은, 피부가 수분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학의 힘을 빌리면 살아나겠지만 잠시뿐이란다. 주어진 삶과 실제 경험의 차이가 클수록 언젠가 받을 실망도 큰 법이라고, 자연의 이치가 변하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아직은 잘 익은 한 쌍이지? 그가 바구니를 보면서 말했다. 오늘이 아무리 좋아도 붙잡을 수는 없어. 변해가는 걸 보는 것도 소중한 일이다. 내일은 얼마나 더 예쁠지, 나는 그 생각에 잠도 안 오거든.

수분은 결국 사라지고 우리는 먼지로 돌아간다.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종이 아래로 나뭇결이 비친다. 연습한 대로 한 손을 허리에 올렸다. 그가 지켜본다고 생각했다. 가운데가 비어있는 바퀴를 그렸다. 고무는 시간이 지나면 변하니까 단단한 쇠로 바깥을 둘렀다. 그리고 속을 대추로 채웠다. 오늘을 과감히 놓아줬어. 나도 요즘 잠을 못 자. 내일은 얼마나 더 예쁠까?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 없다. 가위를 꺼내어 그림을 오려냈다. 종이에 닿는 마찰이 지나간 시간을 나무라는 듯하다. 남는 자리에 바구니를 그리고 편지를 썼다. 팽팽한 대추에서는 사과 향이 나지만 쪼그라든 대추는 씹는 맛이 있어. 달짝지근하면서도 여운이 남지. 우리는 지금 어디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