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사람 둘이 거리에서 시비가 붙었다. 길을 건너다가 서로를 발견하지 못하고 부딪힌 탓이었다. 한 사람은 앞을 보지 못했고 다른 사람은 마주 오는 사람을 피하려다가 넘어졌다고 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거리는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앞을 못 봤다는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고 사람들은 그를 나무라면서 웅성거렸다. 신호가 몇 차례 지나고 나서 넘어져 있던 사람이 일어났다. 그리고 뭔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다가 사람들을 향해 엉거주춤 다가갔다. 사람들이 조금씩 물러나자 그는 아예 길을 트라며 팔을 휘둘렀다. 누군가 비켜주세요!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소란스러운 탓에 아무도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앞을 못 봤다는 사람은 계속 주위를 둘러보며 역정을 냈는데 이제 조금 전 부딪힌 사람에 대해서는 잊은 듯했다. 이때 넘어져 있던 사람이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급히 양쪽으로 갈라서면서 길이 생겼고, 뒤쪽 어딘가에서는 비명이 들렸다. 역정을 내던 사람은 말하기를 멈추고 달려가는 사람을 쳐다봤다. 사람들은 잠시 웅성거리다가 빠르게 흩어졌다. 그리고 경찰이 다가왔다. 갓 스무 살을 넘긴 듯한데 의경 복무는 아닌 것 같았다. 신호가 바뀌고 차들이 굉음을 내며 지나가자 누군가 이제 가야겠다며 바닥에 뒹굴던 병을 세게 걷어찼다. 흩어지던 사람들은 다시 빠르게 모여들어 그를 나무랐고, 경찰은 사람들 틈에 묻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