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시가 지나고 가게 문이 열린다.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와서 문 앞에 팻말을 두고 잠시 서성이더니 사라진다. 몇 분 뒤 사람들이 가게 앞을 지나다가 팻말을 보고 걸음을 늦춘다. 팻말은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사람들은 팻말을 보다가 가게를 보고, 다시 팻말을 유심히 보다가 가게 안을 살핀다. 가게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골목에서 자전거가 나온다. 자전거는 가게 앞을 지나다가 팻말을 보고 멈춰 선다. 팻말은 자전거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멀리서 한 사람이 자전거를 발견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자전거는 사람을 향해 소리 없이 다가가 자세를 낮추고 자신의 등을 내어 준다.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트럭이 가게 앞에 멈춰 선다. 운전자가 내려서 트럭의 뒷문을 열고 누군가를 부른다. 가게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운전사와 한참 이야기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는 트럭 안으로 사라졌다가 곧 자신의 키보다 큰 물건을 끌고 나온다. 물건은 복잡한 무늬의 천으로 싸여 있다. 운전자가 트럭에 올라 시동을 걸자 남자는 손을 흔든다. 그리고 트럭이 떠나는 것을 지켜본다.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다시 나와서 팻말 위에 무언가를 덧쓴다. 사람들이 가게 앞을 지나다가 팻말을 보고 손을 흔든다. 팻말은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물건을 옮기던 남자는 여자에게 다가가 뭔가를 이야기하더니 손을 들어 내가 있는 곳을 가리킨다. 여자는 나를 보고 웃는다. 나는 자판을 두드리다가 말고 길 건너편 가게를 본다. 해가 잘 드는 자리여서 눈앞으로 잔상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