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걷히는가 싶더니 비가 쏟아진다. 오늘 허락된 빛은 다 보았으니 커튼을 친다. 나는 비를 좋아하지 않아서 밖을 볼 일이 없다. 십여 분 전부터 벽을 타고 소리가 넘어온다. 누군가 망치질을 하는 것 같다. 소리는 벽을 넘어 천장으로, 바닥으로 퍼진다. 건물이 비에 젖기 시작하면 저 깊숙이 박힌 철골의 숨소리도 곳곳을 파고드는 법이다. 규칙적인 빗소리를 뚫고 전화 신호음이 울린다. 나는 의자를 당겨 앉으면서 무슨 말부터 꺼낼까 생각한다. 주인만큼이나 낡고 오래된 의자는 바닥에 깊게 파인 자국을 다시 긁고 지나간다.
거기도 비가 옵니까? 창문, 예. 물론이죠. 커튼까지 내렸으니 염려 마십시오. 저도 비 싫어하지 않습니까. 시작이 어려우면 끝은 쉽다더니, 그게 꼭 진리는 아닌가 봅니다. 이렇게 지지부진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관심도 두지 않았을 텐데요. 주변에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하나쯤 손에 잡히는 것도 있어야지, 그래야 살만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들고요. 예, 뭐. 이래저래 잡음이지요. 벽에 걸린 올빼미가 허공을 향해 눈을 부라린다. 지난달 제자들을 데리고 몽골에 다녀왔다는 후배가 ‘집에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며 들고 온 박제품이다. 나는 올빼미의 눈이 향하는 곳을 더듬다가 언제인지 모를 과거를 향해 경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