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딱지의 운명

너를 버리려는 사람이 있거든 먼저 도망치도록 해. 그가 널 친구로 생각하는지, 혹은 지나가는 바람일 뿐인지 그 눈빛만 보면 알 수 있어. 너와 많은 걸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 년은 지켜보도록 해. 사람과 사람이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풀리지 않는 과학과도 같아. 절대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을 어떻게든 섞어보려고 수많은 실험을 거듭하지만, 남는 것은 그 시간 동안 뒤적인 책의 분량과 그로 인해 깨닫게 된 세상의 섭리뿐이지. 그렇게 얻은 경험에 그가 한두 주먹 포함된다면 조금씩 마음을 풀어봐도 좋아. 그리고 너를 꼼짝 못 하게 묶어두려는 사람이 있다면 긴장하도록 해. 그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거든. 나는 가끔 우리가 바닥에 붙은 껌딱지 같다고 생각해. 밟으면 밟는 대로 단단해지고 웬만해서는 떨어지지도 않지만, 혼자서는 일어날 수도 없지. 누가 힘껏 떼주면 그제야 아, 살았다, 싶지만 껌의 운명이 쓰레기통 말고 뭐 있겠어? 처음엔 보들보들한 가루에 싸여 예쁜 옷도 차려입고 하지만 한 번 사용되고 나면 버려지는 거야. 그 뒤는 알아서 살아가야 하지. 오늘을 마주한다는 것은 어지러우면서도 두려운 일이야. 갑자기 찾아온 사람도 그래. 매일 아침 우리는 도망칠 준비를 하느라 바빠. 어제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나,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지만 이미 오랜 시간 해온 일이야.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겠지. 뭐, 나도 최대한 너와 많은 걸 함께 하고 싶어. 꼼짝 못 하게 옭아매겠다는 생각도 가끔 해. 기분 좋아지라고 하는 소리니까 지켜보고 말고 할 것은 없어. 나는 눈빛을 낼 수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