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된 사람

당신은 모든 것에 대해 나와는 다른 사유를 가진 사람입니다. 살면서 여러 현실을 경험했지만 나는 아직 깨닫지 못한 게 많아요. 반면에 당신은 채워진 답을 많이 가진 사람입니다. 당신이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을 둥그렇게 뜬다면 그건 어떤 의문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새로운 이야기를 흡수하는 과정일 뿐이었으니까요. 나는 완전히 나의 것이 아닌 사람은 곁에 둔 적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가능성도 포함되는데, 단 며칠이라도 내 모든 것이 될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잠시나마 교류해볼 수 있었어요. 시한부 관계라고도 하지요.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대부분의 사람은 내 존재를 몰랐던 때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가끔은 의미 있는 관계를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을 한 상자에 담아 두고는 필요할 때 조금씩 꺼내 봅니다. 나의 어릴 적 소중했던 동네 친구, 한때 헤어지기 싫어 울고불고했던 나의 사촌, 밥을 복스럽게 먹는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식당 이모, 나는 사랑했지만 내가 사랑받지는 못했던 사람, 나는 잘 몰랐지만 나를 무척이나 아껴주었다던 사람, 나를 유난히 귀여워해 주던 의사,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담긴 그 상자는 가끔 스스로 닫혀 모습을 감추기도 합니다. 어쩌다 한 번씩 슬픔에 잠길 때면 그런 상자가 있었다는 사실도 잊기 때문이지요. 이제 당신은 나의 소중한 비밀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나중에 내가 없을 때 당신은 이 상자를 보면서 나를 생각하겠지요. 나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사라지면 그때 가끔 생각이나 해주십시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찾지 못한다면 그때는 상자를 해체해도 좋습니다. 내가 당신을 허락했듯이 나 또한 당신의 광기가 받아들인 유일한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