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시작된 곳

술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난 뒤부터예요. 대학생 때는 그냥 멋모르고 먹었고, 회사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편의점에서 맥주를, 그 다섯 개에 만 원 하는 것을 사서 먹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사람들이 술 맛있다고 하는 거 이해 못 했는데 그때부터 알게 됐어요. 생각해 보니 술을 좋아하는 것에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집에서 혼자 마시고 나면 기분이 괜찮아요? 잘 유지도 되고, 다음 날도 괜찮고 그래요? 네, 괜찮아요. 예전에 동생이랑 살 때는 눈치도 보이고 해서 맥주밖에 못 먹었지만, 요즘은 신나게 먹어요. 장 선생이 우리 집에 머물기 전까지는 집에서 술을 종종 마셨거든요. 마트에서 소주 여섯 병 포장된, 그 종이로 곱게 싸인 걸 카트에 담으면 심장이 두근두근했어요. 이걸 뭐랑 먹을까 싶고. 그리고 매주 금요일마다 고기도 샀다가 회도 샀다가 하면서 신나게 먹고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그 있죠, 밤에 남들 잘 때 불 다 끄고 블루투스 헤드폰 쓰고 음악 틀면. 집에서요? 네. 무아지경인 거예요. 그 헤드폰도 장 선생 덕분에 알았거든요. 하여간 좋은 것 많이 배웠어요. 언젠가는 회사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에 퇴근하는데 술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컵라면을 만들어다가 함께 마시는데 아아, 너무 단 거예요. 이것이 행복이지. 그렇게 한참 기분이 좋았는데 어느 날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우울해져요. 그냥 맨정신일 때보다 더, 그러다가 울기도 하고요. 그런데 우니까 또 너무 웃긴 거예요. 라면이랑 맛있게 먹고 놀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왔는데 그치질 않아요. 그래서 울면서 설거지를 했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마시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도 바람직하세요. 설거지까지 하신다니. 저는 보통 다음 날 하는데. 그렇게 며칠이 지나는데 장 선생이 서울에 출퇴근용 집을 구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 와서 살라고, 나 힘드니까 와서 같이 살자고 했던 거죠. 그러면서 월세는 무슨, 냉장고에 맥주만 채워 두라고, 그렇게 된 건데 그 맥주들은 거의 그분 혼자 먹고 저는 그때부터 술을 마시기 싫어져서 안 먹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러고 시간이 많이 지나니까 이제 마시는 게 겁나기도 하고요. 그런데 혹시 그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 제목 생각났다. 이거 봤어요? 아뇨. 흥미로운 제목이네요. 언젠가 퇴근하고 이 영화를 보는데, 주인공이 술고래로 나오거든요. 그런데 술을 너무 맛있게 먹는 거예요. 특히 주인공이 친구와 둘이 소주를 마실 때마다 육개장 사발면이랑 햇반을 같이 드시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어 보였어요. 한 오 분마다 나온 것 같아요, 술 장면이. 우리 집에 육개장이 그때부터 있기 시작했어요. 소주잔을 사 온 것도 그날이고요. 사실 그 영화, 술 먹고 글 쓰는 이야기거든요. 재미있어요.

혼자 술을 먹게 된 계기에 친구들이 옆에 없어서도 있는 것 같아요. 대학생 때는 항상 근처에 있었으니까 같이 먹기도 쉬운데 이제 다들 각지에 흩어지고, 일도 하고 그래서 힘들더라고요. 저도 그래서 시작했어요. 친구, 항상 나만 아쉬워하고 나만 찾는 것 같고 해서요. 장 선생 같은 사람이 결혼을 안 했다면 같이 신나게 잘 놀았을 텐데. 모든 사람이 혼자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저랑 장 선생님 치킨 먹으러 갈 때 안 나오시잖아요. 저 이유를 모르겠는데 사람들을 마주 보면 두근대고 힘들고 그런 게, 이제 편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봐도 그렇길래 좀 무서워서 피했어요. 그런데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까 뭔가 괜찮아지는 것 같아서 아아 이제 됐다, 했는데 오늘 흥분하는 걸 보니 아직 멀었나 봐요. 사람하고 마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바보 되는 것 같고 손가락질받는 것도 같고 그래요. 웃기죠. 아니에요. 저도 항상 그래요. 권 선생은 항상 웃고 밝아 보여서 이분은 힘들어도 잘 헤쳐가시는구나 했어요. 그 힘은 역시 술인가 하고요. 아뇨. 저를 지탱하는 것은 오로지 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