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난다. 남자는 찬장을 열고 잔을 세어 본다. 몇 명이라고 했지? 대답이 없다. 남자는 찬장 문을 닫고 테이블로 다가가 앉는다. 어젯밤에 분명 여기 두었는데 와인이 보이지 않는다. 저 그림, 마음에 들어요. 선생님이 그린 거죠? 글쎄. 워낙 작품이 많아서 나도 잘. 남자는 냉장고를 열고 토마토가 들어 있는 봉지를 꺼낸다. 접시 어디에 뒀어? 말이 없다. 남자는 토마토를 한 입 베어 문다. 바닥에 물 떨어지면 안 돼. 뭐라도 받치고 먹어. 봉지 있잖아. 아니면 손이라도. 토마토는, 냉장고에서 막 꺼냈는데도 불구하고 시원한 맛이 없다. 너도 과일 좋아하는구나. 네. 하지만 먹고 싶을 때만 먹어요. 냉장고 아직 되는 거지? 아직 말이 없다. 선생님은 어쩌다가 화가가 됐어요? 기억나지 않아. 아까 뭐가 마음에 든다고? 남자는 벽에 걸린 그림 중 하나를 가리킨다. 저는 이게 제일 좋아요. 멋있어요. 너 옛날 사람들이 초능력을 믿었다는 거 아니? 저는 지금도 믿는걸요. 남자가 뒤로 돌아선다. 선생님은 그림이 왜 좋았어요? 글쎄. 나는 이제 그림을 그리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