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감

결국 다시 잠드는 데 실패했어요. 대신 오랜만에 피아노를 치기로 했습니다. 한참 먼지를 닦고 자리에 앉았는데 손톱이 자랐는지 건반에 손이 딱 붙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 치다가 손톱을 깎았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청소도 하고 손톱도 깎고 피아노에게 고맙군요. 다시 자리에 앉아 하농을 쳤습니다. 역시 재미없습니다. 이어서 쿨라우의 소나티네를 쳤습니다. 피아노를 사고 제일 많이 친 곡인데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을 봐가면서 더듬더듬 쳤습니다. 시간이 금방 갑니다. 어두울 때 시작했는데 집이 밝아졌습니다. 피아노를 닫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저는 아침마다 우유에 꿀을 타서 마십니다. 오랫동안 반복했더니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면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입니다. 가끔 낮에 우유를 마시면서도 뭔가 새로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일하다가 환기가 필요할 때 우유를 사 먹기도 합니다. 카카오톡을 괜히 살린 것 같습니다. 이번엔 꼭 버텨보고 싶은데 얼마나 갈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에게 말도 걸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데 그러면 피해 주는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자꾸 미안하고 두려운 감정이 듭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를 알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나도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