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한 난봉꾼

“어찌 살고 계시우?”
“고상한 척하면서 미쳐갑니다.”
“왜요?”
“그냥 뭐.”
“개발자 기본 요건이 반쯤 미치는 거라던데, 그래도 정상인인 척할 수는 있잖수?”
“노력은 해요. 지금은 어디쯤입니까?”
“동경 124도 북위 6.5도, 목적지는 광양. 어떻게, 인생의 반쪽은 찾으셨고?”
“아뇨. 찾았나 했지만 이번에도 실패.”
“왜요?”
“글쎄요. 필리핀 근처군요. 우리랑 시차도 거의 없겠는데, 많아 봐야 한 시간?”
“오늘 저녁에 한국 시각이랑 맞출 거라우.”
“재미있는 삶이네.”
“배 타시려우?”
“궁금해서 가끔 찾아봐요. 근데 뭐 아는 것도 없고 비슷한 경력도 없으니.”
“인터넷 속도가 초당 최대 1M인 건 함정.”
“좋군요. 헛짓거리 안 하고.”
“핑 700ms는 기본.”
“백과사전 정독할 수 있겠는데요.”
“백과사전을 읽기엔 일이 많은 것도 함정.”
“거기선 스트레스를 뭐로 풉니까? 매일 같은 사람, 같은 환경, 같은 풍경.”
“풀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한동안 그 방에 눌러살았잖아.”
“게다가 간부면 마음 나누기도 어렵겠다. 오늘은 뭐 먹었어요?”
“떡만둣국이요. 징하다 진짜.”
“왜요? 맛있었겠는데.”
“맛없으니 징하지.”
“우리나라에 와서 쉬다가 다시 출항하면 선원도 바뀌고 그래요?”
“타고 있는 동안에는 주기적으로 바뀌지요. 다음 휴가 지나면 다른 배를 탈 테고.”
“다음번 쉬는 건 언제인가요?”
“9월쯤이지 싶어요.”
“멀구나. 필리핀에서 광양에 왔다가 다시 또 어디 나갔다가 들어오는 거예요?”
“돈 벌어야지. 이번엔 광양 들렀다가 중국 들르고 호주 갔다가 다시 한국행이겠지요. 그리고 어딘가 한 번 더 다녀오면 휴가. 그렇지만 여행은 아닌 게 함정.”
“이번에 휴가 나오면 꼭 봐야지. 뱃사람은 뭐 하고 사나 인터뷰 땁니다.”
“기회 되면 봅시다. 게으른 일상 뭣이 그리 궁금 타고요.”
“세상 신기한 직업이니까요.”
“그럼 온라인 인터뷰 고고.”
“타자 치는 거로는 맛이 안 나요. 리듬 살려 들어야지.”
“그나저나 ○○님도 어서 짝을 만나야 할 텐데.”
“저는 뭐.”
“어딘가 마음 정착할 곳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모르겠어요. 그랬다가 말았다가 해서. 말은 아니라지만, 혼자 살 위인은 아닌 게 분명해요.”
“그걸 이제 알았수?”
“고상한 척 좀 그만해야지.”
“고상해도 ○○님이고 난봉이어도 ○○님이고. 나연씨가 안 보이니 섭섭하긴 하네.”
“나연님 큰 사건 하나 터뜨리고 사라졌어요.”
“왓더? 나연씨가?”
“내 심심할 때 썰 풀어드리지. 그게 사건까지 되는지는 관점 따라 다르겠지만.”
“걔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지.”
“뭐, 간이 좀 큰 분이었던 걸로.”
“지금 당장, 릴리즈 플리즈.”
“지금은 바람을 좀 쐬어야겠어요. 오랜만에 회포를 푸니 기분이 나아집니다. 기다려 보시오. 곧 얘기해줄 테니.”
“민지님은 어디?”
“그분은 따로 방에 있어요. 비둘기로 검색하면 나오는데.”
“됐수. 요 배가 삼천포를 드나들어서,”
“거기도 큰 배가 들어갈 수 있군요.”
“그냥 민지님이 생각나긴 했는디.”
“올가을에 놀러 가기로 했어요.”
“삼천포에?”
“네. 어떻게 지내나 봐야지.”
“사람 사는 게 뭐 있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