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에 관하여

사람의 배고픔은 잠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시작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사람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냉장고의 존재다. 사람은 기계와 같은 움직임으로 침대를 벗어나 슬리퍼를 찾아 신는다. 그리고 부엌을 향해 걷는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서 어두울 때면 두 팔을 크게 저어가면서 냉장고의 위치를 찾는다. 그리고 익숙한 문고리에 손이 닿으면, 그대로 쥐고 당긴다. 이제 냉장고에서는 빛이 쏟아진다. 각종 음료와 물, 아무튼 마실 것들이 밝은 빛 아래에서 사람을 반긴다. 그리고 사람은 목을 축인다. 그리고 목을 축인다. 그리고 계속 축이다가 조금 살만해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사람은 탄수화물을 찾는다. 어떤 날은 빵, 또 어떤 날은 밥, 아침부터 밥을 먹는 날도 있다, 언제는 초콜릿, 혹은 어제 먹고 남은 피자, 그날그날 다양한 음식이 사람의 선택을 기다린다. 가끔 운이 좋으면 데워서 바로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준비돼있기도 하다. 엘렌 코트는 아침에 빵 대신 시를 먹으라고 했는데, 뭐 이런 생각이 들면 목을 축인 것으로 만족하기도 한다. 한 달에 한두 번쯤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시기에 드는 생각인데 실제로 경험하는 일은 거의 없다.

사람의 육체가 배고픔을 잊으면 이제 정신이 배가 고플 차례다. 정신의 배고픔은 사람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시작되어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그리고 여섯 번째 감각이 있다면 그 부분까지, 몸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모든 유기 회로로 퍼진다. 사람의 정신은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 새롭다는 것은 어제와 다른 것, 최고의 것, 더 끝내주는 것, 그리고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흥분감을 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정신은 그런 새로움을 찾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그리고 어디론가 떠난다. 육체가 따라오지 못할 곳으로, 해가 뜨기 전부터 떠나 있다가 점심이 될 때쯤 돌아오거나 해가 저물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돌아온다. 가끔 너무 멀리 간 탓에 며칠 동안 소식이 없기도 하다. 이럴 때 사람은 정신이 가출해서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다, 같은 생각을 하다가 불면증에 빠지곤 한다. 사람은 그의 앞길이 맑고 평온하기만을 바란다. 별것 아니더라도 오늘 일은 오늘 모두 마무리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매일 밤 이름 없는 신에게 기도를 바친다. 내일은 온화한 하루를 맞게 해주세요. 부디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게 해주세요. 사람은 늘 배가 고파서 잠이 드는 순간까지 공허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때 잠시 육체와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시간이 온다. 사람은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씩 지워가면서 어딘가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천천히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