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신촌에서 한 강의를 듣고 있었다. 진로 문제로 고민이 많을 때였는데 하루는 강사가 대학 때 만난 친구 이야기를 해준다. 강사는 신문방송학과를 나왔고 그 친구는 도서관학과를 나왔다고 했다. (도서관학은 이제 문헌정보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강사는 졸업하고 한 광고회사에 들어갔는데 어느 날 친구를 보니 대학원을 다니고 있더란다. 그것도 같은 전공인 도서관학으로. 그래서 강사는 친구에게 너 대학원은 왜 간 거냐, 졸업했으면 나처럼 취업하고 돈도 벌고 해야지, 하고 물었단다. 도서관학으로 취업도 힘들 텐데 대학원까지 다닌다니 조금 이해가 안 갔다고. 그러면서 친구에게 너 혹시 학력 콤플렉스 있냐, 하고 물었는데 친구는 그런 건 아니라고 하더란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강사는 한 회사에 업무차 방문했다가 같은 회의실 구석에서 뭔가를 열심히 적는 친구를 발견했단다. 강사는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단다. 너 고작 이런 거 하려고 그렇게 대학원 다니고 그런 거냐. 그렇게 공부했으면 인마, 좀 다를 줄 알았는데. 그리고 강사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우리에게 말한다. 여러분, 포스코 알죠. 예전 포항제철. 그때 제가 방문했던 회사가 포스코예요. 그리고 이 친구가 지금 거기 사장이에요. 대표이사. 그때는 얘가 학력 콤플렉스가 있나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이 친구는 멀리 본 거였어요. 저는 지금 여기에서 강의하고 있지만, 이 친구처럼 대학원 나오고 한 사람들은 대학에서 강의해요. 저한테도 가끔 문의가 와요. 강의 한 번 해줄 수 있냐고. 이런 건 어떻냐고. 그런데 저는 대학에서는 강의를 못 합니다. 왜냐면 석사가 없거든요. 여러분, 기회가 되면 대학원은 꼭 가보세요. 전공이 뭐가 됐든, 물론 전공도 중요하지만 일단 석사가 있으면 길이 달라져요. 언젠가 나이 들고 은퇴하면 그 경험을 어딘가 전수해줄 기회가 올지 모르는데, 석사가 있으면 그게 대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이 친구가 대학원을 안 갔어도 사장이 됐을까요? 아니.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쩐지 심장이 뛰었다. 역시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오는구나 싶어서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동안 분주했다. 그리고 일 년 뒤, 노트에 ’30대가 지나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다가 ‘석사 가져보기’를 넣었다. 그때 강사가 해준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전공은 상관없으니 그냥 가져보자고 했다. 그리고 이게 시작이 되어서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막상 시작하면 재미도 없을 공부를 꼭 해야 하는지, 굳이 학교에 다녀야 할 이유가 있는지 스스로 물어본다. 오래전 강사가 친구에게 했다는 질문도 내게 던져 본다.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그래, 나 학력 콤플렉스 있다. 그래서 공부도 하고 싶고 뭐라도 해야 열등감이 채워질 것 같아서, 그래서 못 놓는 거다. 하지만 고민은 결국 회사와 돈, 그리고 시간의 문제였다. 내가 쓴 시간만큼 보상이 올까, 졸업하면 뭔가 달라질까, 나는 답부터 알고 싶었다. 어쩌면 그만큼 간절하지도 않고 순수하지도 않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고민은 계속된다. 올해 3월에도 학교를 가볼까 했지만 역시 생각만 하다가 말았고, 그래도 돌아오는 가을에는 꼭 가야지 생각하면서 때를 기다린다. 매년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