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열정이라고

언젠가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봤어. 과거에 전쟁이 잦았잖아. 세계대전이나 걸프전 같은. 그런 전쟁을 우리는 사진이나 책으로밖에 본 적이 없는데 그게 실제 일어난 일인지, 사실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거야. 전쟁 이야기를 쓴 사람들도 그래. 만일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살았더라도 직접 본 게 아니면 역시 매체를 통해 접했을 텐데, 사실 다 지어낸 얘기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거야. 그 많은 전쟁 중 어떤 것도 일어난 적이 없을지 누가 알겠냐고. 물론 증거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겠지. ‘역사’는 그런 것이라고 누군가 역설도 하겠고. 그런데 우리는 보고 듣기만 했을 뿐 현장에 있지는 않았잖아. 많은 사람이 진실이라고 믿지만, 반대로 다 거짓일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거야. 생각해 봐. 내가 A인 건 누가 증명해주지. 네가 B인 건 어때. 사실은 내가 B고 네가 A인데 누가 서류를 잘못 써서 내가 A가 되고 네가 B가 된 건 아닐까. 생물학적인 증거 말고 이름이라든지 사회적인 존재로서 말이야. 내가 A로 불리게 된 진짜 이유는 뭘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는 아닌지, 뭐가 맞고 틀린 지 누가 답을 줄 수 있을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 매체의 공간은 한정돼있으니 어떤 문제는 결국 버려질 수밖에 없어. 그 어떤 문제들은 우리가 100년을 살아도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야. 그렇게 평생토록 모를 일들, 애초에 알 수 없도록 의도된 것들, 그런 거 굳이 알려고 애를 써야 할까. 진실이면 어떻고 아니면 뭐 어때. 사건이야 일어나든지 말든지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도 열정이라고 하더라. 나는 잘 모르겠어. 열정 같은 건 버린 지 오래돼서 그런가. 알고 싶지 않은 걸 알아가며 산다는 건 힘든 일이야.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들만 마주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