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입니까

며칠 전 어느 골목을 지나다가 바닥에 놓인 수첩을 봤다. 누군가 떨어뜨리고 간 모양이었다. 혹시 찾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 둘러보았지만, 근처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뿐이었다. 어딘가 단서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수첩 첫 장을 열어 봤다. 그러나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두 번째, 세 번째, 다른 장도 마찬가지였다. 수첩을 빠르게 넘겨 봤지만, 내용이 적힌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수첩은 사용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마지막 장에 이니셜로 보이는 문구가 남아 있었다. 사람 이름인지는 몰라도 이게 주인을 찾는 단서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가까운 파출소를 찾아가 경찰관에게 수첩을 보여줬다. 누군가 떨어뜨린 것 같다고, 주인을 찾아주면 좋겠다고 말하고 그의 손에 수첩을 쥐여줬다. 경찰은 수첩을 앞뒤로 살펴보고 넘겨도 보더니 알겠다고, 맡기고 가시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파출소를 나왔다. 그리고 조금 전 지나온 골목으로 돌아가다가 다시 바닥에 놓인 수첩을 봤다. 아까와 같은 모양인데 겉표지 색이 달랐다. 수첩의 맨 뒤 장에는 아까 본 것과 동일한 이니셜이 남아 있었다. 나는 수첩을 가방에 넣고 서점에 가서 펜을 샀다. 수첩을 잃어버린 주인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뒤에 나는 다시 파출소를 찾았다. 아까 수첩을 맡아주신 경찰관 계신가요, 하고 물었는데 여기에 그런 사람은 없다고 했다. 나는 의아해서 파출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지만 정말 아까 본 얼굴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파출소를 나와 수첩을 처음 발견했던 골목으로 돌아갔다. 경찰관은 그곳에 있었다. 그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 수첩을 펴고 뭔가를 읽는 듯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가 읽던 것은 내가 새로 주운 수첩에 적은 편지였다. 경찰관이 나를 돌아봤다. 나는 순간 그 수첩의 주인이 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