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케이크

진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오랜만에 고구마 케이크나 먹으러 가자면서. 진수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학교 때 이야기를 한참 하더니 ‘우리 그때 빵집 자주 갔잖아. 너 맨날 고구마 케이크 먹고 싶다고 노래 부르고 그랬는데. 기억 안 나?’ 하고 물으면서 내 반응을 살피는 것 같았다. 나는 사실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대로 이야기하면 어쩐지 미안할 것 같아서 나 그런 거 안 먹은 지 오래됐어, 하고 답했는데 그러면서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 때문인지 그 옛날 야간 자율학습의 추억 때문인지, 혹은 김진수라는 흔하디흔한 이름 때문인지 모르겠다. 진수는 그래서 언제가 괜찮겠냐고, 말 나온 김에 약속이나 잡자면서 ‘나 예전의 김진수 아니다. 제법 세련되어졌어.’ 하는데 나는 또 왠지 그의 그런 말이 싫었다. 내가 알던 그는 촌에서 막 올라온 순둥이였는데, 내가 기억하는 김진수는 빵 먹으면 목말라 힘들다면서 늘 나의 식성에 반대하던 아이였는데, 세월이 사람을 바꾸어 놓은 건지 혹은 그에 대한 내 기억이 왜곡된 탓인지,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전화 덕분에 잊고 있었던 그의 얼굴도 조금씩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왜 갑자기 전화해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왜 하필 고구마 이야기를 했는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특별히 기억나는 장면이 없어도 누군가 몇 번이고 말해주면, 그리고 설득시켜주면 나는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은 모습 그대로의 사람이 되는가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