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

요 며칠 잘 먹고 잘 놀면서 살았다. 그래서 괜찮아진 줄 알았다. 오랜만에 연차를 내고 쉬면서 미용실도 가고 자동차 정비도 받고 쇼핑도 하며 하루를 보내는데,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자꾸 회사 생각이 난다. 회사에 있으면 불쑥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회사 밖에 있으면 아, 차라리 회사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풀려고 한다. 그래서 퇴근길에 맛있는 걸 먹거나 친구들과 놀거나, 뭔가 재미있어질 만한 것들을 찾는데 나의 스트레스는 사무실 문을 나서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나도 스트레스를 푸는 어떤 활동에 동참하고 싶지만, 내게는 이미 풀어야 할 스트레스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풀려는 집단’과 함께 밥을 먹거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종종 허무해진다. 내가 열정적이지 못한 걸까, 이 사람들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은 걸까, 다들 목청도 높이고 흥분도 해가면서 기분 전환을 시도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전환할 기분이 없을까. 왜 이 순간에도 회사에 가고 싶을까. 마트에서 회를 사다가 집에서 혼자 술을 기울였다. 처음엔 맛있어서 혼자 캬, 하고 감탄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회도 술도 감흥이 식는다. 아직 남은 연차가 많은데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쉬는 날 뭐라도 하면 된다지만 그 ‘뭐라도 해’가 내게는 제일 어려운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