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시장

지난 주말,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가는 길에 한 노인을 만났다. 옆자리가 비어서 앉았을 뿐인데 ‘기다리고 있었다, 잘 왔다’면서 내 손을 덥석 잡은 노인은 거의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내게 말을 건넸다. 부모님은 어떻게 지내시느냐부터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학교는 어딜 다녔느냐, 지금 사는 곳은 어디냐, 형제자매가 있느냐, 결혼은 하였느냐, 지금은 어딜 가느냐 등 정말 많은 질문을 받았는데 그러는 동안 나는 네, 아니오, 어디 다닙니다, 어디에 삽니다, 같은 대답을 역시 쉬지 않고 했다. 그래도 나는 질문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이다가 잘 들리지 않으면 다시 말씀해주세요, 다시요, 하고 되묻고는 최대한 대답해드리려고 애썼다. 버스가 종로5가를 지날 때쯤 노인은 ‘내려야겠다’면서 벨을 누르고 창밖을 보았는데, 이때 처음으로 노인이 내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버스가 동대문시장에 도착하자 노인은 내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 출입문을 향해 갔다. 노인의 뒷모습을 보는데 문득 나는 질문을 받기만 했을 뿐 노인에게 뭔가 물은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노인의 등 뒤에 대고 조심히 가세요, 하고 말했는데 노인은 버스에서 내리느라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이 말에 잠깐 웃는 것도 같았다. 잠시 후 버스가 다시 출발하자 창밖에 선 노인은 나를 바라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버스가 시끄러운 탓에 거의 들리지는 않았지만, 노인의 입 모양은 마치 ‘잘 가, 언제 또 놀러 와’ 하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나도 노인을 향해 덩달아 손을 흔들면서 입 모양으로 말했다. 안녕히 계세요, 또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