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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리튀르

“인문학을 왜 배운다고 생각하나? 문학을 배우고 역사를 배우고 언어를 알고 그림을 보고 글을 쓰고, 이런 것들을 너희는 왜 배우지? 취업을 해야 하니까? 사회가 원해서? 그럼 돈을 벌고 결혼하고 아이도 키우고, 그렇게 나이 먹고 더 이상 사회에서 너희를 필요로 하지 않으면, 그 후엔, 그땐 뭘 하지?”

“틀렸어. 너희는 지금 취업을 바라보면 안 돼. 인문학은 취업을 위해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야. 인문학은, 평생을 위한 공부다. 은퇴를 하고 육십, 칠십, 팔십이 되어 사회와 경제에서 소외돼도 너희는, 너희 삶을 살 수 있다. 계속 생각하고 고찰하고, 너희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어른이 되는 일

유치원 땐 의사가 아빠와 오촌 당숙 다음으로 최고였다. 나는 병원을 자주 다녀야 했는데, 의사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콧물도 멈추고 감기도 그치곤 했으니까. 그래서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물으면 대뜸 의사라고 답했던 것 같다. 아빠는 내가 되지 않아도 어차피 우리 집에 있었고 오촌 당숙은 너무 멀리 있어서 되고 싶지 않았다.

의사선생님은 종종 만나러 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병원을 가는 날엔 엄마가 호두과자를 사주었는데, 주사를 맞고 찡그리기라도 하면 바나나 한 송이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당시 바나나는 꽤 비싼 군것질이었다. 우리 집에서 볼 수 없었던 과일은 일단 비싼 거였으니까. 그래서 과일장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뭐든 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땐 어른들이 참 재미있어 보였다.

마이클 크라이튼, 콩고, ERTS. Database를 Databank로 읽게 만든 장본인.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있었다. 산꼭대기도, Kevin Colister도 모두 그때 태어났다. 핑키가 망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행복했다.

진실은 그렇다. 하루를 채우고 지식을 채우고 배를 채우고, 빈 공간을 메우다 보면 언젠가는 끄트머리에 닿으리라-고들 한다. 어떤지는 묻지 말아 달라. 즐거운지, 재미있는지도 묻지 말아 달라. 즐거워야 할 일도 없고 재미있어야 할 일도 없다. 진심이 아닌 일을 해본 적 없으니 진심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일 년 하고 반, 지금이 세 번째다.

시간은 제 갈 길을 가는데 나는 자꾸 기억을 잊고 더듬는다.

발표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현실이 된다는 것,
이보다 대단한 건 없다.
인생의 유아기가 진짜 끝났다.

이야기

한 주제로 일주일에 하나씩 만들기. 얼마 전 책 보다가 생각났어. 전에 얘기했던, 일이 년 뒤를 위해 뭐든 쌓아두자는 거, 기억나? 빈 말 아니거든. 언젠가 백 곡의 음악과 백 장의 그림이 남겨진다 생각해봐. 우리는 항상 움직임을 주고받아. 서로를 재구성하는 거지. 기억은 온전하지 않아. 기록은 그래서 중요한 거고. 나는 일상을 남기고 싶어. 그림이든 음악이든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우리의 방식이 있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알잖아. 언제든 준비만 돼있으면 돼. 너와 나는 주기적으로 만날 필요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