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 8단지요. 여기 온 지는 사 년쯤 됐어요. 이사할 시기는 지났는데 가끔 불안해져요. 몸이 안다잖아요. 가까운 곳에 들판이 있거든요. 풀이 많이 자라는데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잘라줘도 금세 다시 나곤 해요. 이름이 뭐라더라. 한 해 걸러 이 년에 한 번씩 철새도 오고요. 궁금하신 것 같아서요. 목소리는 낮춰주세요. 둘만 있는 것 같아도 사실 아니거든요. 헬렌 오수세나. 풀 이름이요. 여기서는 다들 이렇게 불러요.
옛날에는 별이 많이 떴대요. 안내판은 없지만 길이 쉬워서 괜찮을 거예요. 해가 지기 전에는 오셔야 해요. 행사가 있거든요. 음료는 제가 한 잔 드릴게요. 도움 필요한 게 있으면 불러주시고요. 저는 그냥 머물고 있어요. 처음엔 호기심이었는데 지내다 보니 적응이 돼서요. 갈 곳이 없지는 않은데 편하기도 하고요. 다들 비슷할걸요. 음악은 괜찮아요? 여기 관리하시는 분이 힙합을 좋아해서요. 다른 걸 틀어도 오다가다 들러서 바꾸시곤 해요. 헬렌 오수세나. 필요할 때 이걸로 불러주세요. 불안하진 않죠? 젖은 땅이 있으니까 여기, 장화 신으시고요. 이따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