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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내리고

요즘 제일 신날 때가 언제인지 알아? 집에 와서 티브이 틀 때다. 뭐가 나올지 모르거든. 이런 생각도 해. 음식을 배달시키는데 무작위인 거야. 메뉴는 없고 주방장 기분 따라, 뭐가 올지도 모르는데 뭐든 오는 거지. 나 요즘 바느질도 한다. 바지 주름 따라 모양내는 게 재미있어. 예측이 힘들면 뭐든 좋지 않겠어?

어제는 신기한 꿈을 꿨다. 밤새 소나기가 내렸거든. 소나기가, 별이 되어 내리는데 나는 우산을 쓰고 있었어. 한참 지나고서 우산을 접다가 알았지. 별에 찔렸더라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게? 부럽다고 말했어. 너랑 나 바꾸자고. 내가 우산 할 테니, 너 씌워줄 테니까 그 별 내가 맞게 해달라고. 그러니까 웃더라, 우산이.

요즘 마음이 춤을 춘다. 바람에 솟았다가 울고 가라앉고, 그 느낌 알려나 몰라. 날은 흐리지, 집중은 안 되지, 종일 구상만 하다가 선 하나 긋고 자는 거야. 어제 누가 그러더라. 이게 그림이냐고. 근데 그거 알아? 바느질하다가 보면 실도 춤을 춘다. 가끔 본다니까. 그래, 기억은 어쩔 수 없지. 나는 잊었는데 몸이 아는 거야. 마주친 게 아닌데 마주친 거라고.

이 노래는 제목만 웃겨. 가사는 순 엉터리다. 내가 이래 봬도 항상 어두운 건 아니야. 가끔 춤도 춘다니까. 여전하지? 좋을 때도 있어. 떨리기도 하고. 나는 내 기억의 무게가 좋아. 오늘은 종일 맑았어. 네가 날 보는 방식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네가 쓰는 단어가 예뻐서, 생각만 해보는 거야. 알아, 다 말뿐이지. 오늘은 달도 맑다. 나는 무슨 꿈 꿀지 정했어. 별이 소나기가 되어 내린다.

캐러멜

“맛있어?”
“달아.”
“그거 저으면 더 맛있는데.”
“숟가락이,”
“여기. 참, 이거 볼래?”
“오늘 알바가 없네.”
“내가 요즘 라떼에 빠졌거든.”
“이거 꼭,”
“어때?”
“네가 만든 거야?”
“응. 어제 배운 거. 어때?”
“거품인가, 이런 건 얼마나 걸려?”
“기계가 있어. 그래서 어떠냐고.”
“신기하네.”

청솔공인중개사

석촌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청솔공인중개사라는 이름의 부동산 사무실이 있었다. 두 중개사가 동업하듯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나는 인터넷에서 ‘저렴한 가격의 투룸’을 검색하던 중 그곳을 알게 되었다. 2012년 여름의 일이었다.

처음 사무실을 찾았을 때 나는 들뜬 상태였다. 퇴근하고 난 뒤의 늦은 시각이어서 나는 ‘죄송합니다. 괜찮을까요?’라고 물었고 중개사는 ‘그럼요. 원래 문 닫을 시간인데 손님이 계시면 언제든 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시종일관 웃으며 내 궁금증을 하나씩 해결해주었다. 한 시간가량을 다니면서 여러 집을 방문했는데 아직 집이나 가격에 대해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어떤 집을 보아도 아늑하고 좋아 보였다. 얼마 뒤 나는 그 사무실에서 첫 계약서를 작성했고, 두 중개사는 손뼉을 치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은 큰 행복 중 위에서 두 번째의 것이었다.

2년이 지나고 나는 두 번째로 사무실을 찾았다. 다른 지역을 가볼까 싶어 강동구의 한 중개사를 통해 암사동 근처를 둘러보고 난 뒤의 일이었다. 다시 찾은 사무실은 반갑고 편안했다. 중개사는 그동안 집값이 많이 올라서 내가 원하는 집을 이 동네에서 찾기는 힘들 거라며 옆 동네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네. 그래도 호수에 걸어서 갈 정도의 거리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2년 전 방문했을 때보다 조금 더 많은 집을 둘러보고 난 뒤에 나는 그 사무실에서 두 번째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그때의 경험은 아마 살아오면서 받은 것 중 단기간에 가장 많은 집을 둘러본 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두 중개사는 이번에도 웃으며 기뻐해 주었고 나는 2년 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족했다. 새로 얻은 집은 모든 창이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밤까지 햇살이 가득했다.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찾았을 때는 그로부터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전화로 먼저 사정을 말했을 때 중개사는 답을 하지 못했다. 집을 못 구해서가 아니라 내가 사무실을 다시 찾게 된 이야기에 대해 딱히 해줄 말이 없었던 것 같다. 원하는 집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하려고 하자 중개사는 ‘주차공간, 남향, 확장 안 됨, 호수랑 가까운 곳, 맞죠?’라고 하면서 웃었다. 동네를 둘러보면서도 중개사는 편한 선배나 가까운 친척 같은 느낌을 풍겼는데, 한 번씩 ‘이 정도 거리면 괜찮죠? ○○씨 석촌호수 좋아하잖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마치 서로 자주 왕래하는 사이인 듯 정성을 다해 집을 골랐고, 얼마 뒤 나는 그 사무실에서 세 번째 계약서를 작성했다. 중개사가 내민 청구서에는 수수료 위로 굵은 두 줄과 함께 금액이 새로 적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원래 내야 하는 수수료의 절반보다 적은 액수였다. 그래서 나는 ‘이거 맞는 거예요? 금액이 다른데.’라고 물었고, 중개사는 잠시 청구서를 확인하더니 ‘이번에는 다 받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미안해서 그래.’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웃었다.

3년 전 마지막 이사를 준비하면서 오랜만에 찾은 사무실 자리는 간판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다른 사무실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두 중개사가 잠시 쉬기로 했다는 것인데,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부동산 사무실을 방문하기로는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2년 전 휴대폰의 연락처를 모두 지우는 과정에서 중개사의 번호도 사라지고 말았다. 여느 주말처럼 종로를 가기 위해 서울역을 지나다가 문득 그때 생각이 났다.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이던 곳이 오늘은 조금 한산하다.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이 사람들에게 지금껏 가장 큰 행복은 뭐였을까’에 대해 생각하는데, 조금 걷다 보니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싶기도 하다. 내가 떠올리는 만큼 그들도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아파하고, 슬퍼도 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마지막까지 나에게 좋은 집을 선물해준 두 중개사에게 이 글을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눈에 보이는 것

A.
너 자신을 알라, 웃기지 말라 그래. 자기 자신을 아는 순간부터 세상은 전에 알던 곳이 아닐걸. 그럼, 생각 없이 살아? 그건 모르겠고, 난 그냥 네가 고루해지는 게 싫어. 너는 어떤데? 난 원래 고루한 사람이야.

B.
사람들은 내가 되게 생각이 깊은 줄 안다. 너도 그래? 깊은 것까진 모르겠는데 궁금하긴 해. 뭐가? 아니 뭐, 말도 잘하고. 내가? 응. 그럴싸하잖아. 무슨 소리야, 난 내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몰라. 너 떨지도 않던데. 눈에 보이는 건 다 사기야. 듣는 것도. 내 마음이 어떤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C.
잠깐 봤는데 집중 잘하던데요. 놀래기는요. 글은 잘 쓰고 있어요? 네. 그럭저럭요. 재미있었나 봐요? 그냥, 뭐. 그이는요? 못 만났어요. 시간이 필요한가 봐요. 거기 아직 있긴 한 거죠? 그렇지 않을까요. 사실 모르겠어요. 우리 둘 다 버려졌나 봐요. 괜찮아요? 아까 예전 편지를 봤거든요. 향수 냄새가 남아 있더라고요. 그래도 둘이 있을 땐 얼마나 자상했는지 몰라요. 그렇겠죠. 제게도 좋은 친구였어요. 찾아가서 따질까 봐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소용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