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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봄

삶은 내가 바라는 대로 곱게 흘러가지 않는다. 갖고 싶은 전공, 하고 싶은 공부, 갖고 싶은 직업, 다니고 싶은 회사는 언제나 명확히 정해져 있었지만 막상 눈 앞에 선택지로 놓이는 건 그 옆에 있는 다른 것들이었다. 그렇게 갖고 싶은 전공 대신 다른 전공을 택하면서 학교를 갔고, 하고 싶은 공부 대신 옆에 있던 다른 공부를 시작했고, 갖고 싶은 직업을 이미 가진 동료들과 한 팀이 되어 그 옆에 있는 다른 직업을 갖게 됐고, 다니고 싶던 회사는 몇 년 전 쪼개져 둘, 셋, 넷으로 점점 분화됐다. 그리고 선택의 순간 항상 눈 앞에 나타나는 다른 후보들이 있다. 이게 기회인지 아닌지, 빛깔만 좋은 살구인지 판단하기는 참 힘들뿐더러 그 선택을 한다는 건 내게 잔인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순진한 생각을 한다. 멀리서 운명이 지켜보다가 ‘답답하게 자꾸 딴 데만 보네’ 싶을 때 나타나서 나를 찌른다고. 이게 맞는지 아닌지 네가 알리 없지만 어디 둘러봐, 당장 다른 선택지가 있어?

그래서 나는 또 희한한 여행을 시작한다. 싫어하던 건 내 역사로 편입되어 싫어할 수 없게 되고 하고 싶지 않던 건 내 자아의 일부가 되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십 년, 이십 년 뒤 결론이 궁금하지만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결론을 갖게 될 테니까.

흔적

내가 그들에게서 듣는 건 나는 가져본 적 없는 다른 누군가의 어떤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지도 몰랐던 내 표류의 흔적들이다. 그건 연민도 동질감도 아니며 그저 나 자신일 뿐. 글이 나를 읽고 해석이 나를 해체한다.

기도

매일 아침 불편하고 낯선 하루가 나를 반기길 바란다. 매일 밤 사납고 추운 바람이 나를 두렵게 하길 바란다. 매 순간 내 판단이 틀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일들이 미궁에 빠지길 바란다. 내가 그들을 의심하는 만큼 내 주위 모든 이들이 나를 의심하길 바란다.

결말

“혹시 추리물인가요? 아님 로맨스?”
“추리? 모든 소설은 추리물이지. 작가는 탐정이야. 이야기를 좇잖아. 어떻게든 결말이 나지. 이야기가 결말이 난다는 건 문제를 풀었다는 뜻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