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어?”
“달아.”
“그거 저으면 더 맛있는데.”
“숟가락이,”
“여기. 참, 이거 볼래?”
“오늘 알바가 없네.”
“내가 요즘 라떼에 빠졌거든.”
“이거 꼭,”
“어때?”
“네가 만든 거야?”
“응. 어제 배운 거. 어때?”
“거품인가, 이런 건 얼마나 걸려?”
“기계가 있어. 그래서 어떠냐고.”
“신기하네.”
Category: Random
캐러멜
눈에 보이는 것
A.
너 자신을 알라, 웃기지 말라 그래. 자기 자신을 아는 순간부터 세상은 전에 알던 곳이 아닐걸. 그럼, 생각 없이 살아? 그건 모르겠고, 난 그냥 네가 고루해지는 게 싫어. 너는 어떤데? 난 원래 고루한 사람이야.
B.
사람들은 내가 되게 생각이 깊은 줄 안다. 너도 그래? 깊은 것까진 모르겠는데 궁금하긴 해. 뭐가? 아니 뭐, 말도 잘하고. 내가? 응. 그럴싸하잖아. 무슨 소리야, 난 내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몰라. 너 떨지도 않던데. 눈에 보이는 건 다 사기야. 듣는 것도. 내 마음이 어떤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C.
잠깐 봤는데 집중 잘하던데요. 놀래기는요. 글은 잘 쓰고 있어요? 네. 그럭저럭요. 재미있었나 봐요? 그냥, 뭐. 그이는요? 못 만났어요. 시간이 필요한가 봐요. 거기 아직 있긴 한 거죠? 그렇지 않을까요. 사실 모르겠어요. 우리 둘 다 버려졌나 봐요. 괜찮아요? 아까 예전 편지를 봤거든요. 향수 냄새가 남아 있더라고요. 그래도 둘이 있을 땐 얼마나 자상했는지 몰라요. 그렇겠죠. 제게도 좋은 친구였어요. 찾아가서 따질까 봐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소용없어요.
항상 지금처럼만
천장이 열리면서 빛이 쏟아진다. 오늘은 물빛이 하늘만큼이나 파랗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호를 지르기 시작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 우리가 제일 아끼는 순간이다. 이때만큼은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추억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는 팝콘을 나누어 먹는다. 언제였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원래 팝콘 없이 단 10분도 앉아있을 수 없는 아이들이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우리 중 누군가가 물 색깔이 청바지를 닮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멋있다고 생각한 우리는 한동안 청바지만 입고 다녔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청바지는 각자의 옷장에도 점점 쌓여 갔다. 언젠가부터 연례행사가 된 이 공연은 우리가 한자리에 모이는 유일한 시간이 되었다. 돌고래 한 마리가 잠시 하늘을 나는가 싶더니 곧 여러 마리가 줄지어 날아오른다. 나는 고개를 돌려 기억 속 웃음을 하나씩 꺼내어 본다. 우리는 어쩜, 마주 보는 시간도 비슷하다. 유난히 파란 물빛을 보며 우리의 우정도 언제나 파랗길, 항상 지금처럼 설레기를 기도한다.
그림자
눈을 감는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 그림자를 감춘다. 나는 네 옆에 있다. 너의 향에 대한 기억을 그리고 있다. 나는 네 향을 훔친 빈자리에 내 이름을 쓴다. 네 그림자가 외로워 겉옷을 덮는다. 그리고 다시 이름을 쓴다. 나는 네가 사는 곳을, 나이를 지운다. 네 그림자는 나를 잊는다. 나는 너의 향을 입고 그림자를 밟고, 나를 지운다. 이제 너는 향으로만 남았다. 너는 향으로 남아 세상을 여행하고 나는 그림자로 남는다. 그리고 나는 기억을 잃는다. 어떤 그림자에서는 좋은 냄새가 난다.
그림자는 세상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한 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했어.’ 듣지 않아도 어떤 가락인지 아는 음악, 누워서도 할 수 있는 많은 것, 문밖의 뻔한 세상을 떠올린다. 그리고 사람은, 듣지 않아도 어떤 가락인지 아는 음악을 챙겨 들으며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생각을 일어나서 하고 문밖에 뭐가 있는지 뻔히 알지만, 둘러봐야 할 이유를 생각한다. 비슷한 결과를 얻을 게 뻔한 일을 다시 하면서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리듬을 타는 이유를 오늘은 찾아보자 다짐한다.
그림자가 사람에게 묻는다. ‘그럼 향이 널 죽이는 거니?’ 사람은 향을 떠올린다. ‘아니. 향은 언제나 승리한다. 생각보다 힘이 세서 나를 삼킨다. 하지만 그게 날 죽이는 건 아니다.’ 그림자는 마지막 남은 향을 지운다. 사람은 내일에 대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