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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사람

1.
“카카오톡 괜히 살렸나 봐요.”
“왜 또?”
“동네방네 괴롭히는 것 같아요. 사라지고 싶다 정말.”
“왜 저런대. 연락 안 하고 살다가 연락하니까 괴롭히는 것 같아요?”
“몰라요. 사람들한테 말 걸고는 싶은데 걸면 피해 주는 것 같아서 괴로워요.”
“왜 피해예요? 옥장판 파는 것도 아닌데.”

2.
“○○님 유쾌해서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
“엄청 소심해요. 누구 꼬실 때 빼고요.”

3.
“아까 그건 무슨 소리래요.”
“뭐, 소심하다는 거?”
“아니, 그 뒤에. 나 누구 꼬신 적 없는데.”
“웃기시네.”

술요일

1.
“답답해요.”
“기다리던 출근인데, 기분이 안 좋아요?”
“술. 술이 필요해요.”
“오늘의 파티를 구해봅시다.”

2.
“○○님, 왜 술 안 먹어요?”
“아직 퇴근 12분 전입니다. 혀가 울고 있어요.”
“팩소주를 얼려서 가방에 넣고 다녀봐요. 빨대로 쪽쪽.”
“어때요? 맛나던가요?”
“전 중독자 아니라서요.”
“아, 예.”
“옛날에 남친이 회사 사람들하고 등산갈 때 얼린 팩소주 갖고 가서 히트쳤어요. 군대의 초콜릿 박스 수준으로.”

3.
“○○님, 내일 5시까지 우리 동네로 와요.”
“와, 부럽다.”
“쟤 어차피 못 와요. 일 안 끝나서.”
“저는요?”
“하은님은 아무 때나 언제든 와요.”

4.
“저 아무 때나 쉴 수 있거든요?”
“쉬지 말아요.”
“알아요. 쉬면 우울해요.”
“사람이 중간이 없어.”

나 아무 일 없어

오래전 그 일을 겪고 나서 생긴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불구가 된 마음입니다. 저는 이제 마음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도 좋다고 먼저 표현을 못 해요. 예전에는 그런 고민 안 했거든요. 좋으면 좋고 아니면 마는 건데, 사람들의 마음이 항상 나와 같지 않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고 이런 마음이 이제 방정맞음, 혹은 주책이란 걸 깨닫기도 했고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저와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아요. 이렇게 문제 있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아, 돌려서 물어본 적은 있어요. 이런 사람은 절대 만나지 않겠다 하는 게 있냐고. 그런 종류의 사람이 있냐고요. 감옥에 갔다 온 적 있는 사람이라거나 뭐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이거나요. 그러니까 이게 저에게는 장애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거예요.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그런 ‘문제 있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주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요. 내가 허구한 날 이런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카카오톡도 자꾸 탈퇴하고 그랬어요. 안 그럼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다가 더 망가질 것 같았거든요. 이미 망가졌는데 하소연이 뭐 대수겠냐만, 그래도 ‘나 망가졌어’ 하고 말하는 것보단 ‘나 아무 일 없어, 그냥 잠수 좀 탄 거야’ 하는 게 서로에게도 좋잖아요. 역시 생각을 시작하니 기분이 추락하고 있어요. 아무 말 안 하는 게 제일 좋은데 그러면 가끔 너무 답답하거든요. 어떤 기분인지 모르시겠죠.

뭐라도 해

요 며칠 잘 먹고 잘 놀면서 살았다. 그래서 괜찮아진 줄 알았다. 오랜만에 연차를 내고 쉬면서 미용실도 가고 자동차 정비도 받고 쇼핑도 하며 하루를 보내는데,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자꾸 회사 생각이 난다. 회사에 있으면 불쑥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회사 밖에 있으면 아, 차라리 회사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풀려고 한다. 그래서 퇴근길에 맛있는 걸 먹거나 친구들과 놀거나, 뭔가 재미있어질 만한 것들을 찾는데 나의 스트레스는 사무실 문을 나서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나도 스트레스를 푸는 어떤 활동에 동참하고 싶지만, 내게는 이미 풀어야 할 스트레스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풀려는 집단’과 함께 밥을 먹거나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종종 허무해진다. 내가 열정적이지 못한 걸까, 이 사람들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은 걸까, 다들 목청도 높이고 흥분도 해가면서 기분 전환을 시도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전환할 기분이 없을까. 왜 이 순간에도 회사에 가고 싶을까. 마트에서 회를 사다가 집에서 혼자 술을 기울였다. 처음엔 맛있어서 혼자 캬, 하고 감탄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회도 술도 감흥이 식는다. 아직 남은 연차가 많은데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쉬는 날 뭐라도 하면 된다지만 그 ‘뭐라도 해’가 내게는 제일 어려운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