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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파트너

1.
“오늘 낮에 엄청나게 더울 거랍니다. 무려 30도가 넘는다고.”
“곧 장마도 온다면서요.”
“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의 술친구가 되어주실 분을 구합니다.”
“저는 맥주가 좋은데.”
“수락하시는 건가요?”
“몇 시까지 먹게 될까요?”
“다은님이 허락하는 때까지입니다.”
“금요일이면 늦게까지 마셔드릴 수 있는데 월요일이라.”
“괜찮습니다. 저는 고기 한 점도 행복해요.”
“좋습니다.”
“독대가 성사되었다.”
“○○님 오늘 차 안 가져왔어요?”
“건물 지하에 잘 계십니다.”
“그럼 집에는 대리로?”
“아뇨.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어차피 내일도 일찍 일어날 테니 괜찮아요.”
“○○님이 지하철이라니.”

2.
“이번 주말에 비 온대요.”
“저는 집돌이라.”
“그래서 갑자기 파전이 생각났는데,”
“오. 소주 한잔할까요?”
“오늘 눈 뜨자마자 술이 고프길래 우리 캡틴에게 독대 신청해뒀어요. 세운님에게는 요일 선택권을 드립니다.”
“오늘 갑시다.”
“오늘요?”
“끼워만 주신다면. 요즘 고민도 있고요.”

3.
“다은님이 좋다고 합니다. 우리 이따가 고기 먹을까요?”
“좋습니다. 매우 좋습니다.”

세속적인 일상

한창 걸어서 회사에 다닐 때 규칙이 있었다. 건물은 정문으로만 다닌다는 건데, 조금 돌아가더라도 그렇게 하면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지각을 하더라도 당당히 정문으로 하자, 뭐 그런 생각도 했다. 그래서 건물이 멋진 회사에 다니고 싶었다. 외관이 웅장하면 정문을 통과할 때 어깨가 으쓱할 테니까. 실제로 이 어깨뽕은 내 회사생활에서 꽤 많은 걸 상쇄해주었는데 일단 출근할 때 멋진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게 했고, 점심때 다른 문으로 나갔다가 우연히 정문을 볼 때면 ‘내가 아침에 저길 통과했지’ 생각에 다시 으쓱해지기도 했다. 야근하고 새벽에 퇴근할 때도 나는 꼭 정문을 이용했는데, 늦은 시간이라도 이렇게 정문을 통과하고 나면 역시 멋진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에 기분이 빠르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느끼는 감정은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낼 때 드는 시원함과도 비슷했다.

이직하면서 다음 회사를 고를 때도 규칙이 있었는데 우선 단독 사옥과 사내식당이 있어야 했고, 식당이 없다면 카페라도 있어야 했다. 이왕이면 사람도 많아서 건물이 북적이길 바랐으며 무엇보다도 잘 알려진 회사였으면 했다. 길 가다 아무나 붙잡고 얘기해도 다 아는 그런 곳을 다니고 싶었다. 그냥 업무의 고충이나 야근의 피로 같은, 회사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를 상쇄해줄 뭔가가 필요했는데 나는 그걸 사옥과 사내식당, 그리고 이름으로 정했을 뿐이다. 회사를 잘 다닐 수 있을지 언제 또 그만두고 싶을지 몰라서 뭐든 으쓱할 거리를 만들어 두고 싶었다.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오랜 시간 잘 버티고 싶었고, 최소한 아빠만큼은 해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한때는 순수한 개발자라고 돈보다 명예, 그보다 마음의 소리를 좇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저 민망한 소리일 뿐, 업무의 세계에서 돈과 보상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단독 사옥도 사내식당도 없다. 건물은 크지만 다른 회사와 나누어 쓰고 있고 사내식당 대신 큰 카페가 있다. 이곳에 오고부터 밥을 잘 먹지 않게 되었으니 식당이 없는 건 이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도 올겨울이면 새로운 사옥이 생긴다고 하니 몇 달만 더 기다리면 다시 규칙을 만족하게 되는 셈이다.

가끔 내가 얼마나 세속적인지에 관해 생각하는데 그 정도가 약할 때면 아직 순수함이 남아있구나, 싶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그런 게 있을 리 없다는 결론에 닿는다. 거울을 보다가 부끄러워 고개를 돌릴 만큼 기분이 별로일 때가 잘 없는데 나의 세속성을 탐구하다 보면 부끄러움은 그저 일상인 것이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순수함보다 세속적인 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으니 나름의 성과라고는 할 수 있겠다. 몇 년 전 마지막 이직을 할 때 다음 회사로 가장 많이 고려했던 조건은 스타트업이었다. 작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도전을 경험하고 그걸 창업에 활용하자는 계획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 우주에 금이 가는 사건을 맞이하면서, 나는 또다시 반듯하고 그럴싸한 명함을 찾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이 회사를 선택한 지도 벌써 5년하고도 두 달이 지났다. 나에게 있어서 5년이라는 시간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전학을 경험한 뒤로 어느 기관에서도 가져보지 못한 최장 기록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그 의미가 남다르고 크다. 이 회사에 남아있는 한은 앞으로 보내는 시간이 모두 처음이자 신기한 기록인데 여기에도 세속성을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몇 년 전부터 가끔 정년퇴직의 꿈을 꾼다. 내가 있는 업계는 아직 정년을 경험한 사람이 없어서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오래지 않아 첫 대상이 나타나기를 희망한다. 어쩌면 나는 그전에 더 재미있는 다른 길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때때로 흥미로워서 한두 가지 직업만 경험하고 살기에는 어쩐지 아깝기 때문이다. 또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길기도 하다. 이 업계에 정년퇴직자가 없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지 모르겠다. 재미있는 무언가를 좇다가 그걸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모였지만 회사는 결국, 재미와는 거리가 먼 곳이니까.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느냐의 문제일 뿐 누구나 언젠가는 알게 된다. 그러니까 순수한 마음만으로는 살기 힘든 세상이다.

명상하는 사람

“난 아마 스트레스로 죽고 말 거다.”
“나도 계속 우울하구나.”
“무슨 일 있어?”
“이제 어떤 일과도 상관이 없는 것 같아.”
“나는 처한 상황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너는 이제 작별해야지.”
“이제 좀 나아진 거야? 아니면 아직 진행 중인 거니.”
“나아진 건 없지만, 다스리려고 노력 중이야. 생전 안 하던 명상도 해보고 그래.”
“좋은 방법이겠구나.”
“요즘은 일상이 생존 과학 다큐멘터리 같아. 식당은 하루에 몇만 원 팔기도 힘들고 방역 대비한다고 지출은 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그러네. 그림은 완전히 뒷전이고. 그런데 너는 무슨 일이야?”
“자영업은 진짜 힘들겠더라. 난 괜찮아. 이제 적응해서.”
“난리야 여기는. 문 닫은 식당도 많고. 그래도 부정적인 생각은 안 하려고 한다만.”
“집 분위기는 어때?”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는 나대로 속앓이는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지. 일부러라도 웃는 것 같아. 가끔 서로 욱할 때도 있지만.”
“그래. 웃음이라도 있어야지.”
“그래도 어머니가 이해 많이 해주셔서 다행이야. 다른 사람들은 내가 유난 떤다고, 병이라고 한다. 아버지 건강은 점점 안 좋아지기만 하고. 속에 화만 쌓이네.”
“각자의 유난스러움이 있는 법. 그 유난이라도 없으면 뭘 위해 살겠어.”

그것도 열정이라고

언젠가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봤어. 과거에 전쟁이 잦았잖아. 세계대전이나 걸프전 같은. 그런 전쟁을 우리는 사진이나 책으로밖에 본 적이 없는데 그게 실제 일어난 일인지, 사실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거야. 전쟁 이야기를 쓴 사람들도 그래. 만일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살았더라도 직접 본 게 아니면 역시 매체를 통해 접했을 텐데, 사실 다 지어낸 얘기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거야. 그 많은 전쟁 중 어떤 것도 일어난 적이 없을지 누가 알겠냐고. 물론 증거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겠지. ‘역사’는 그런 것이라고 누군가 역설도 하겠고. 그런데 우리는 보고 듣기만 했을 뿐 현장에 있지는 않았잖아. 많은 사람이 진실이라고 믿지만, 반대로 다 거짓일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거야. 생각해 봐. 내가 A인 건 누가 증명해주지. 네가 B인 건 어때. 사실은 내가 B고 네가 A인데 누가 서류를 잘못 써서 내가 A가 되고 네가 B가 된 건 아닐까. 생물학적인 증거 말고 이름이라든지 사회적인 존재로서 말이야. 내가 A로 불리게 된 진짜 이유는 뭘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는 아닌지, 뭐가 맞고 틀린 지 누가 답을 줄 수 있을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 매체의 공간은 한정돼있으니 어떤 문제는 결국 버려질 수밖에 없어. 그 어떤 문제들은 우리가 100년을 살아도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야. 그렇게 평생토록 모를 일들, 애초에 알 수 없도록 의도된 것들, 그런 거 굳이 알려고 애를 써야 할까. 진실이면 어떻고 아니면 뭐 어때. 사건이야 일어나든지 말든지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도 열정이라고 하더라. 나는 잘 모르겠어. 열정 같은 건 버린 지 오래돼서 그런가. 알고 싶지 않은 걸 알아가며 산다는 건 힘든 일이야.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들만 마주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