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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사람

1.
“나 ○○님 본 거 같은데. 전에 수트 입은 거.”
“수트요? 저는 무색무취입니다.”
“결혼식이라고 본 것 같은데.”
“그건 민성님.”
“아, 기억의 혼란.”

2.
“저 사람 다 알면서 저러는 거예요. 제가 압니다.”
“아니, 무슨 매력이 있길래요?”
“○○님이 끼가 좀 있어요.”
“잘생겼어요? 부티가 나나?”
“그냥, 아저씨 같진 않아요.”

3.
“내가 귀에 못 박히게 몇 번을 말했는데도 일을 저 지경을 만들고.”
“저 막 끼 부리고 그러지 않아요.”
“그건 태생이라서.”
“무슨 일 벌이지도 않고요.”
“그러시겠지요.”

골목대장

늑대가 나타났다. 동네 입구에서 어슬렁거리는 녀석이 있다고 누군가 알려왔다. 그러면서 집에 총이 있는 사람은 챙겨서 나오라고 했다. 나는 총 대신 긴 막대기를 들고 나갔다. 집에 남은 사람들은 대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을 통해 우리를 지켜봤다. 사람들은 골목을 뒤지면서 늑대를 찾았다. 어떤 사람은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 내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 지난 뒤에 멀지 않은 곳에서 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늑대라고, 늑대를 발견했다고 외치는 소리도 났다. 여기저기서 창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머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몇 초 뒤에 가까운 곳에서 탕, 하는 소리가 났는데 이번에는 으악, 하는 비명도 함께 들려왔다. 사람들은 총소리가 난 곳을 향해 뛰어갔다. 나는 이제 됐겠지 싶어 집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때 눈앞에서 늑대가 나타났다. 나는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서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는데, 늑대는 나를 보면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나는 긴 막대기를 든 손에 힘을 주고 마음속 기도를 시작했다. 어디선가 다시 탕, 하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먼 곳이었다. 사람들은 아직 늑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늑대는 나를 향해 두세 걸음 걷더니 이내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가까운 골목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대로 서서 몇 초쯤 기다리다가 늑대가 사라진 골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시계탑 3:30

“언제 씻으려고?”
“몇 시지?”
“한 시 넘었어. 거의 두 시가 다 돼간다.”
“아, 씻어야겠구나.”
“여태 누워있었던 거야?”
“아니. 누웠다가 앉았다가, 컴퓨터도 했다가 뭐 이것저것.”
“밥은?”
“안 먹었지. 알잖아.”
“너 괜찮은 거 맞지?”
“그럼. 야, 안 괜찮을 건 또 뭐냐.”
“그냥 뭐. 내가 너를 아니까.”
“세 시? 시계탑이라고 했지?”
“세 시 반. 천천히 준비하고 나와.”
“메뉴나 생각해 놓으셔. 나 탄수화물은 안 먹는다.”
“그럼, 고기?”
“너 먹고 싶은 대로.”
“또 꾸미느라 늦지 말고, 대충 입고 나와.”
“알겠습니다.”

어차피 우연

어떤 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선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는데 순간적으로 무지개가 보인다거나, 밥을 먹다가 목이 말라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게 맥주라서 갑자기 밥과 맥주를 함께 먹는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우연은 하루에도 수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는데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오고 치이는 것들이 몇 있다. 우리는 그걸 일상이라고 부른다. 어차피 모든 일은 우연이지만, 내가 보고 만지는 것, 내 의지가 담겼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우리는 일상이라고 부르면서 내 하루, 내 시간, 내 일기에 포함되는 어떤 중요한 사건이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그 ‘사건들’이 우리에게 실제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수없이 놓치는 많은 것 중 겨우 몇 가지를 붙들고서 이게 나야, 이게 내 감정이고 내 모습이야, 라고 말하지만 그게 진짜 ‘나’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스스로 묻고 또 묻는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답을 찾지 못한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단편적인 사건들의 모음이 곧 일상이라면 삶 자체도 거대한 우연인 셈인데 우리는 거기에 왜 그렇게 많은 이유를 붙이고 감정을 쏟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좋아하고 아파하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우연이면 뭐가 되었든 그냥 흘려보내도 상관없을 텐데 왜 그러지 못하는지, 왜 때로는 무겁다고 느끼는지 알고 싶다. 어떤 시간은 딱히 찾아오지 않아서 텅 비기도 하며 이렇게 빈 시간은 다시 채워지지 않아서 우리를 힘들게 한다. 나는 이따금 예고 없이 찾아든 생각을 글로 남기면서 이게 내 일상인가 보다, 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