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선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는데 순간적으로 무지개가 보인다거나, 밥을 먹다가 목이 말라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게 맥주라서 갑자기 밥과 맥주를 함께 먹는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우연은 하루에도 수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는데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오고 치이는 것들이 몇 있다. 우리는 그걸 일상이라고 부른다. 어차피 모든 일은 우연이지만, 내가 보고 만지는 것, 내 의지가 담겼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우리는 일상이라고 부르면서 내 하루, 내 시간, 내 일기에 포함되는 어떤 중요한 사건이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그 ‘사건들’이 우리에게 실제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수없이 놓치는 많은 것 중 겨우 몇 가지를 붙들고서 이게 나야, 이게 내 감정이고 내 모습이야, 라고 말하지만 그게 진짜 ‘나’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스스로 묻고 또 묻는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답을 찾지 못한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단편적인 사건들의 모음이 곧 일상이라면 삶 자체도 거대한 우연인 셈인데 우리는 거기에 왜 그렇게 많은 이유를 붙이고 감정을 쏟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좋아하고 아파하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우연이면 뭐가 되었든 그냥 흘려보내도 상관없을 텐데 왜 그러지 못하는지, 왜 때로는 무겁다고 느끼는지 알고 싶다. 어떤 시간은 딱히 찾아오지 않아서 텅 비기도 하며 이렇게 빈 시간은 다시 채워지지 않아서 우리를 힘들게 한다. 나는 이따금 예고 없이 찾아든 생각을 글로 남기면서 이게 내 일상인가 보다, 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