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 때까지 달려봐. 그럼 알 수 있다. 로코모티브. 편지 뒷면에 그가 남긴 것은 번호가 아니라 단어였다. 식어가는 커피를 앞에 두고 그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몇 시간이고 달릴 수 있는 동력, 그런 게 내게 있을 리 없지 않냐며 눈을 반짝인다. 사람을 알고 지내는 것을 국토대장정에 비유하던 그는 특전사에서 십여 년을 보냈다고 했다. 단어로만 들었지 그게 뭘 하는 집단인지 내게 알려준 적도 없으면서, 로코모티브. 그는 자신이 멈추지 않는 바퀴 같다고 했다. 만날 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자신의 인생은 내리막이라고, 경사가 급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멈추지 않는 바퀴는 천천히, 끝을 모르고 굴러간다고 했다.
로코모티브. 언젠가 멈출 날도 오지 않을까요. 연료가 부족하다든가 바퀴가 고장 난다든가, 멈춰서 한숨 돌릴 시간도 언젠가 생기지 않을까요. 나는 그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다. 어릴 땐 어땠는지부터 대학에서 제일 좋아했던 수업은 무엇인지, 자주 입는 티셔츠는 어디가 좋아서 샀는지, 나를 볼 때마다 눈동자가 떨린다는 걸 아는지, 그렇게 묻고 싶은 게 많아서 가끔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면 이렇게 답장을 받는데 뒷면에 꼭 암호 같은 말이 적혀있는 것이다. 로코모티브. 지난 주말 우리는 달맞이 운동에 합의했고, 그 시작으로 같이 호수를 한 바퀴 뛰기도 했다. 먼저 숨찬 사람이 커피를 사는 거라고, 그가 자신만만해 보였던 것은 내게 커피를 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결론지었다.
내가 한 말 잘 생각해보고. 멈추지 않는 게 중요해. 뭐든 끝이 있는 법이지만 네게는 그게 참 어려운 일이었으면 한다. 마치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처럼 그는 나에 대해 아는 게 많았다. 어떤 말을 하면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 내게 물은 적도 없으면서 꽤 많은 걸 아는 듯했다. 우리가 처음 인사를 나눈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심지어 나는 그의 전화번호도 모른다. 우리는 메신저로만 얘기하는 사이였으니까. 내가 너무 빨리, 쉽게 빠져버린 게 잘못인지도 모른다. 그의 손이 유난히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호수를 뛰고 난 다음이지만 몸이 금방 식어 있었고, 그것은 아직 봄이어서라기 보다 내 불안한 심리때문이었을 테니까.
모르겠으면 전화해. 메신저가 편하면 문자 보내든지. 번호는 뒷장에 있다. 로코모티브. 그의 닉네임이 바뀌어 있다. 몇 시간이고 달릴 수 있는 동력, 내게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을 건넸다. 그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내일 다시 호수를 뛰어 보자고 했다.